|
카테고리
최근 등록된 덧글
역시 파고들기를 하기 ..
by 구데리안 at 10:28 그거야 복상사의 상대가.. by 하늘이 at 07/03 덕분에 머릿속에 있던 무.. by 구들장군 at 07/03 제가 쓴 글에도 맥아더에.. by 어부 at 07/03 저도 핵 투발 요구를 통설.. by 안모군 at 07/03 오호~ 이건 몰랐던 사.. by 파파울프 at 07/03 마왕님/ 묘한 놈이군요. .. by 번동아제 at 07/03 확실히 핵은 그때부터 .. by Ya펭귄 at 07/03 쏘게 탄약 내놓으3...... by 아이스맨 at 07/02 전 차마 공개할 수 없는 .. by 루드라 at 07/02 http://nextop.egloo.. by 우마왕 at 07/02 하늘이님 어린양님/ 부.. by 번동아제 at 07/01 688님 사이트에 댓글 남.. by 번동아제 at 07/01 박물관 사이트를 찾긴 .. by ssn688 at 07/01 음 저로서도 꽤 흥미있는.. by 안모군 at 07/01 복상사의 상대가 누구였.. by 길 잃은 어린양 at 07/01 688님 /마카오쪽 웹사이.. by 번동아제 at 07/01 이제 어차피 해당 박물.. by ssn688 at 07/01 전 지진으로 떨어진 백금.. by 을파소 at 07/01 커헉 복상사....-ㅁ-;; by 하늘이 at 07/01 최근 등록된 트랙백
1940년대 조선 주요 도시..
by 길 잃은 어린양의 놀이터 .. COMBAT TEAM 해당 .. by 우마왕의 또다른 세상 번동대감의 서평에 대한 .. by 우마왕의 또다른 세상 임진왜란 유물의 보고,.. by zert의 환상을 노래하는.. 망상 사관을 가진 이들은.. by 초록불의 잡학다식 땅박 치하에서 유물을 .. by 우마왕의 또다른 세상 부산에 한 번 다녀 와야 .. by 파파울프의 음흉한 둥지 해골선 도본과 아우트리.. by 시쉐도우의 잡상노트 끄.. 이순신이 무슨 영웅입니까? by zert의 환상을 노래하는.. 구부러진 차승자총통? by 파파울프의 음흉한 둥지 메모장
라이프 로그
이글루 파인더
skin by 이글루스 |
2008년 07월 02일
맥아더가 6.25 전쟁 당시 위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원자폭탄의 사용을 요구했단 주장은 제법 유명한 "떡밥"이다. 특히 중공군이 개입으로 전황이 극도로 악화된 1950년 12월24일 맥아더가 핵폭탄 26발을 워싱턴에 요구했다는 이야기는 국내 일각에서 맥아더를 "전쟁 미치광이"로 묘사할 때 단골로 이용되는 근거다.
이 좁은 한반도나 그 인접 지역에 핵폭탄 26발을 사용하려 했을 정도로 "정신 나간 장군"에 대한 악담은 지금도 흔히 볼수 있다. 하지만 모 연구원의 L박사가 이런 이야기가 근거가 없다고 이미 모 학회의 춘계학술대회에서 주장한데 이어 이를 정식 논문으로 모 학술지에 게재했다. (인쇄만 끝난 상태로 아직 배포가 시작되지 않았다) 맥아더가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육군성에 제출한 것은 사실이다 (CINCFE to DA 1950.12.24, RG9) 극동군사령부는 미 육군성에 제출한 이 보고서를 통해 소련 지역 15개소, 중국 지역 6개소를 포함 총 21개소가 원자폭탄의 타격 목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이를 위해서는 총 26발의 원자폭탄이 필요하다고 계산했다. 지금까지 이 문제로 맥아더를 비난했던 사람들은 그동안 이 보고서가 극동군사령부의 요구사항을 담은 것이 아니라 미 육군성의 질문에 대한 단순한 답변이었음을 밝히지 않았다. 맥아더가 워싱턴에 핵폭탄 26발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만약 핵을 사용할 경우 어디에, 얼마만큼의 핵폭탄이 필요한지'를 묻는 미 육군성의 공문에 단순히 맥아더의 사령부가 답변한 것이다. 미 합동참모본부는 중공군의 참전이 소련군의 참전으로 이어질수 있다고 보고, 소련이 6.25 전쟁에 개입할 때 소련 영토에 대한 보복공격을 비상계획으로 검토했다. 그 과정에서 미 합참은 "만약" 소련에 대한 핵보복을 가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지역의 리스트를 제공하라고 미 육군성에 요구했다. 이런 합참의 요구에 따라 미 육군성은 맥아더에게 핵무기를 사용할 지역과 수량에 대한 질문을 한 것이다. 이런 질문에 따라 단순히 26발의 핵폭탄과 21개 장소의 투발지역을 제시한 맥아더에게만 비난을 집중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맥아더가 당시 핵무기 사용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또 있다. 작전분석 전문가들이 ORO-T-1 Tactical Use of Atomic Bomb In Korea를 1950년 12월22일 완성하고 핵무기 사용을 권고했을 때 예하부대인 미 8군과 10군단의 찬성에도 불구하고 막상 맥아더의 극동군사령부는 동의를 유보했기 때문이다. 당장 국립문서보관소 RG 349 BOX 738의 ORO-T-1 상에 이같은 극동군사령관 맥아더의 입장을 담은 1951년 1월 기준 메모가 첨부되어 있다. 여기에는 "유엔의 목적이 불명확하기 때문에 본 사령부는 한국에서 핵무기를 즉각 전술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추천하지 않는다", "ORO연구는 평지에서 핵무기의 효과를 크게 평가하고 있지만 한국은 거의 구릉과 산악지대이다" 등등의 표현으로 ORO-T-1의 연구결과에 대한 동의를 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이 밖에도 1950년 7월 맥아더가 미 합참에 핵무기 사용을 요구했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L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이런 비판 또한 공식 자료상으로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1950년 7월 맥아더가 미 합참에 핵무기사용을 요구했다는 주장의 근거는 아직 공식자료상에선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태며 그나마 같은 시기 미 합참의 관련 문서에선 오로지 극동군 관할지역에 핵무기 배치를 요구했다는 기록만 남아있을 뿐이다. 1950년 12월1일 맥아더가 자신의 집무실에 열린 회의실에서 핵무기 사용 권한이 자신에게 주어질 경우 중국과 소련 극동지역의 도시에 대한 공격 우선순위를 거론한 사실도 자주 비판의 근거로 인용된다. 하지만 50년 12월의 건도 첫머리에서 언급했듯이 미 합참의 우발계획이나 비상계획, 미 육군의 연구와 연계된 발언일뿐 맥아더가 주도적으로 핵무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싶어했다는 증거로 삼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중공군의 개입 이후 미군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 핵무기 운용이 적극적으로 검토(중국에 대한 협박 차원에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대통령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언급되기까지 했다)됐고 이 과정에서 맥아더도 중국 영토 내에서 핵운용에 대해 긍정적으로 고려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맥아더의 단독 드라이브 만으로 시도된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맥아더의 "코발트 60년" 운운하는 유명한 발언도 출처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오염벨트를 통한 개입 차단이라는 아이디어가 맥아더에서 나왔다는 근거또한 여전히 모호하다. 핵오염지대 벨트를 통한 중공-소련군 개입 차단 방안은 미 육군 작전참모부의 11월16일자 보고서에 이미 나와 있지만 이 보고서는 가장 적극적인 핵운용론자였던 볼트 작전참모부장의 명의로 콜린스 육군참모총장에게 제출되었을 뿐 맥아더와 직접적 관련은 없다. (Memorandum by Bolte to Collins-OPS 091 Korea, 1950.11.16 RG319) 1950년 7월부터 1951년 상반기까지 미 육군과 공군, 합참의 여러 문서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6.25 전쟁 당시 핵무기 사용 가부에 대해 미군 내부에서도 다양한 견해가 존재했다는 점, 소련의 개입 등 사태가 더욱 악화될 경우를 대비해 핵무기 사용에 대비한 구체적인 비상계획은 작성되었다는 점, 그 차원에서 극동지역에 일부 핵무기가 배치되었다는 점 뿐이다. 일시적으로 미군 내부에서 핵무기 사용 필요성에 대해 주장이 검토 차원에서 제기되거나 사태 악화를 대비한 비상계획 차원에서 핵무기 운용 가능성이 논의되었을 뿐 즉각적인 핵무기 운용을 전제로 한 직접적인 조치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는 이야기다. 특히 존슨 국방장관이나 미 육군 작전참모부장 볼트 소장 등 핵무기 사용을 적극 찬성한 인물이 존재한 반면에 정보분석가 파서니 처럼 핵무기 사용에 대해 반대한 전문가들의 보고서들이 미 공군성 내부에서 제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파서니의 보고서(The Use of Atomic Weapons in Korea 1950.7.27,RG341)는 1) 북한군의 보급이 국경 외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핵폭탄을 북한 산업지역에 투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점, 2) 북한 주민들 다수가 핵폭탄에 사망할 경우 전체 한국인들로부터 오히려 반감을 살 우려가 높으며, 3) 북한군에 대한 직접 타격 역시 북한군이 스스로 한 곳에 집결해 적절한 공격목표를 제공하지 않는한 그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4) 핵공격이라는 최후의 일격이 전쟁 종결이라는 원하는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미국에 대한 서방진영의 신뢰성에 큰 타격을 주고 비난만 불러올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유사한 견해는 핵무기 사용시 소련의 예상 반응을 질문하는 미 육군 작전참모부의 공문에 대한 정보참모부의 회신(Intelligence Estimate of World-Wide Soviet Reaction in the Use of Atomic Bombardment in the Korean Conflict 1950.7.13 RG319)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 육군 정보참보부는 1) 한국에서의 핵사용은 서유럽, 라틴아메리카, 중근동, 그리고 극동의 친미 국가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으며 2) 정치적이고 선전적 차원에서 소련을 유리하게 할 것이며 3) 소련 군부의 반응은 정보차원에서 확인할 수 없으며 4) 절대무기로 평가받는 핵무기는 확실한 상황에서 사용해야 하는데 현재 한국의 상황이 그렇지 못하므로 핵무기 사용에 반대하고 있다. L박사가 인정하고 있듯이 이 연구는 맥아더의 핵무기 사용 요구설에 대해 단정적이고 최종적인 결론을 시도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밝혀진 공식 자료로 볼 때 '6.25전쟁시 (맥아더가 한때 중국-소련 영토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한 것은 사실이지만 ) 미군 당국의 전반적인 핵무기 운용 검토의 큰 흐름에서 맥아더가 차지하는 위상은 상대적으로 보조적인 위치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추정할만한 가능성은 높아진 것 같다.
2008년 07월 01일
![]() "강철문명-동아고병기 도록"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이 많아서 설명 남깁니다. "강철문명-동아고병기 도록"은 2006년 5월에서 8월 사이에 마카오 예술박물관에서 개최된 동아시아 도검류 특별전시회(강철문명-동아고병기대전)의 도록입니다. 38~188 페이지까지는 칼과 냉병기 관련 논문 7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분량이 제법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같은 내용을 중문과 영문으로 2중 수록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내용에 깊이가 있는 논문은 아닙니다. 192~263 페이지는 중국 / 264~297 페이지는 한국 / 298~319 페이지는 일본 329~377 페이지는 필리핀 / 378~443 페이지는 동남아 등 5개 권으로 나눠 칼 사진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444 페이지 부터는 도판설명입니다. 전체적으로 도록에 수록된 유물은 기본적으로 칼 위주지만 창 종류도 약간 섞여 있는 정도입니다. 전시회에 출품은 됐는데 도록에 포함되지 않은 유물도 제법 있습니다. 도록을 기준으로 중국의 경우 총 104점의 수록 유물중 88점이 상대~한대까지의 유물로 주로 고대에 치우친 것이 특징입니다. 전시회 제목에 강철이 들어가 있지만 중국의 경우 동검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청대 실물 도검은 수량도 많지 않을뿐더러 대부분 특정한 개인 수집가(주정무 선생)의 소장품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이 도록의 한계입니다. 청나라 황실용 도검 중에는 공예적 수준으로 볼때 상당한 것들이 적지 않은데 이 전시회에 출품되고 도록에 수록된 것들은 그 정도 고급 도검들은 아닙니다. 여하간 이 도록에 수록된 중국 무기류는 상~주~춘추전국~진한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것은 25점. 대부분 국내 박물관에서 지금도 볼수 있는 것들이거나 각종 특별전을 통해 공개되었던 칼들입니다.주로 육군박물관, 경인미술관, 고려대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전쟁기념관 등에 소장된 칼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도검류 외에 국립고궁박물관의 언월청룡도와 협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도검의 경우 도록에 수록된 사진의 질로만 보자면 워낙 책의 판형이 대형인 덕에 2002년판 육군박물관 "한국의 칼 특별전 도록"이나 2004년판 XX박물관 "조선시대의 도검 특별전 도록" (저작권 문제로 비공개/배포 제한), 2004년판 전쟁기념관 "한국의 전통무기 특별전 도록", 2007년판 국립대구박물관 "한국의 칼 특별전 도록" 기타 육군박물관의 각 연도판 도록 (1985년판, 1988년판, 1992년판, 1996년판, 1998년판, 2002년판)의 도검 사진보다는 확실히 우수합니다. . 일본 것이야 관련 도록이 한 두 권이 아니니 굳이 이 도록에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기대할 필요는 없겠구요. 필리핀과 동남아쪽 도검들이 수록된 것이 특이하다고 할 수 있죠. * ISBN은 978-99937-59-09-6 * 영문제목 History of Steel in Eastern Asia - A View on the Development of Weaponry * 가격 330 MOP (파타카/마카오 달러) 인쇄물량은 800부로 알고 있고 국내에는 2006년 연말에 10여부 정도 들어왔습니다. 국내에선 구하기 힘들지만 마카오에선 최근까지도 재고가 남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책의 편집은 아래와 같습니다. 접은 상태에서의 크기가 19인치 모니터의 화면에 꽉찰 정도로 책이 아주 크고 무거운 편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