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에서 조선시대 수군 함재 화포의 사거리 규정 41



예전에 warfog.net에서 토론할 때나 XXXX집에 쓴 논문에서 조선시대 수군의 이상적 교전거리는 "50~300m" 혹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400m 이하 수준"일 것이라고 쓴 적이 있다. 왜군이 사용하는 표준형 조총의 유효 사거리를 벗어나 조선군 대/중형총통의 사거리상 우위를 누릴수 있으면서도 롤링이나 피칭 등에 따른 오차를 가급적 줄일수 있는 거리가 그 정도라고 봤기 때문이다.

여기서 300m, 400m는 확정적인 의미를 가진 숫자는 아니다. "총통의 성능상 사거리에 관계 없이 해상사격시 선체 동요 현상 때문에 실제 교전시 사거리는 짧아질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다만 이런 추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문헌적 근거가 없는 것이 문제였는데 드디어 유사한 수치를 보여주는 자료를 이번에 확인했다.

위 사진은 조선시대 수군 훈련 규정과 관련된 미공개 책자다. 붉은 줄을 표시한 부분을 보면 해상훈련(수조)시 대/중 총통의 최초 사격거리는 200보, 조총은 100보, 활은 90보로 규정되어 있다. 1보를 1.2m로 보는 보편적 이론에 따르자면 실제 조선 수군의 총통 사격 시작 거리는 240m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같은 수치는 조선시대 화약무기 관련 문헌에 나오는 각종 총통류의 사거리 기록에 비해 훨씬 짧은 사거리다. (절반은 커녕 1/5~1/10 수준에 해당한다) 총통류의 성능에 관계없이 해상에서 실제 교전 거리는 상당히 짧게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

조선시대 보법에 따른 거리 자체를 어떻게 환산할지에 대해 의견이 갈리고 있기는 하지만 (조선 수군들이 함상에서) 대중형 총통을 쏠 때  조총 사거리에 비해 대략 2배 정도의 거리에서 사격을 시작했을 거라는 추정은 충분히 할수 있을것 같다.


이하는 몇년 전에 썼던 논문에서 내용상 관련 있는 부분이다. 왜 해상에서는 사거리를 짧게 잡을 수 밖에 없는지를 설명한 대목이다. (원 논문의 각주는 생략)


함상 운용상의 제한점

함상에서의 화약무기 운용, 특히 대포의 운용에는 많은 제한 사항이 따른다. 적 함선뿐만 아니라 대포가 거치된 아군의 함선도 끊임없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또한 해상에 떠있는 선박은 롤링(rolling), 요잉(yawing), 피칭(Pitching) 등 다양한 흔들림(동요) 현상의 영향을 받는다. 이 같은 흔들림 현상은 지상에서 보다 함상에서의 화약무기 명중률을 현저하게 저하시키는 요인이 된다.

조선 수군들이 화약무기를 운용할 때 어떻게 롤링이나 요잉 같은 다양한 흔들림 현상에 대처했는지, 혹은 반대로 이런 현상으로 인해 함상에서의 대포 운용에 어떤 제약사항이 있었는지 규명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천자총통에서 대장군전을 발사할 경우 탄도곡선에 대해 이론적으로 분석한 박혜일 교수의 연구결과를 보면 천자총통에서 대장군전을 발사할 경우 사각 5도일때 사거리는 152m, 10도 일 때는 289m, 20도일 때는 525m라고 한다. 이러한 사거리 계산이 정확한 것인지는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사각에 따라 상당한 사거리 차이가 있다는 기본적인 전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5~10도 수준의 롤링은 황천이 아닌 일반적인 해상 조건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사각 5도를 적용했을 때 5도의 롤링으로 인한 오차가 더해진다면 사각이 10도가 된다. 박교수의 계산결과를 참고할 경우 이때 발생하는 사거리 오차는 137m나 된다.

단거리라면 표적이 되는 선박의 크기가 있으므로 롤링에 따른 오차를 극복할 수 있겠지만 사거리가 길어질수록 사격시 롤링에 따른 오차 부담이 상당히 커진다고 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각 변화에 따라 발사체의 비행 최고 고도 문제이다. 천자총통에서 대장군전 사격시 계산결과를 보면 사각 10도시 대장군전 비행중 최고 고도는 13m다. 이 정도 비행 고도라면 어느 정도 사거리 오차가 발생하더라도 표적 선박의 높이가 13m 이내라면 어떻게든 대장군전이 표적 선박에 명중할 수가 있다.

하지만 사각 20도면 대장군전의 비행중 최고 고도가 50m, 사각 30도면 최고 고도 100m, 사각 44도면 최고 고도가 200m에 달해서 이야기의 차원이 완전히 달라진다. 조선 수군이 10~20도 정도 수준의 사각으로 사격을 시도하는 상황에서, 5~10도 수준의 롤링이 발생한다고 가정한다면 실제 사각은 15도, 20도, 25도, 30도로 변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사거리 오차는 둘째 치고 대장군전의 비행고도 자체가 50~100m로 높아지는 것이 문제다. 이런 높이라면 총통에서 발사된 대장군전이 표적 선박의 돛보다 더 높은 고도로 선박 상공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롤링에 따른 사각 변화와 이에 따르는 사거리 오차보다는 사각 변화에 따른 발사체의 최고 비행 고도의 변화가 명중률 향상에 심각한 장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오차 부담 때문에 20도 이상의 사각으로 사격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요잉 등에 따르는 좌우 오차 문제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었을 것으로 보인다. 선체 길이가 30m 정도인 일본의 대형 아다케 정도라면 배의 중심부를 겨냥했을 때 배의 선수와 선미 사이의 각도차이는 사거리 50m 일 때는 33도, 사거리 100m 일 때는 그 절반정도인 17도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거리 100m 일 때는 17도, 사거리 50m 일 때는 33도 이상의 요잉의 발생하지 않는 한 오차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나마 요잉은 롤링보다는 부담이 적다는 의미이다.

박혜일 교수는 천자총통에서 대장군전을 발사할 때의 사거리와 비행고도를 계산했지만 롤링과 요잉, 피칭 등에 따른 오차 문제는 천자총통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총통에 적용되는 공통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오차 부담을 줄이기 위한 현실적 방법은 가급적 근거리에 접근한후 사격을 하거나 사각 자체를 가급적 작게 잡는 길 뿐이다.

만약 사각 5도로 사격할 때 발사체인 대장군전의 최고 비행 고도는 3.2m에 불과하므로 이 경우에는 사거리 오차가 발생해도 좌우 조준만 정확하다면 어떻게든 표적이 되는 선박을 맞출 수 있다. 10도의 경우에도 최고 고도는 13m이므로 어느 정도 오차 극복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흔들림 현상이 있는 함선에서 화약무기를 사격할 때 높은 명중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근거리에 접근해서 사격하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상대적으로 낮은 사각을 선택, 수평에 가깝게 사격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더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9세기 이전 조선의 포가는 사각 조절이 매우 어렵거나 불편한 방식으로 되어 있다. 또한 조선군이 간접사격에 참조할 수 있는 사각별 사거리 제원이나 화약량별 사거리 제원이 존재했다는 증거도 없는 실정이다. 이 경우 체계적인 사거리 수정은 불가능하고 경험에 기초한 임의적인 조절만 가능할 뿐이다.

다시 말해 수평사격에 가까운 낮은 사각이 아닐 경우 화약무기 운용요원의 숙련도가 이례적으로 높지않는한 실질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명중률을 확보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유럽 전근대 해군들이 상대적으로 수평에 가까운 사각으로 사격하는 것을 선호했던 것도 이 같은 롤링에 따르는 사거리 오차나 비행고도 오차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까지 조선 수군은 막연하게 총통의 긴 사거리로 상대적으로 사거리가 짧은 조총을 압도했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 같은 오차 문제를 고려한다면 조선 수군은 상대적으로 낮은 사각의 수평에 가까운 사격을 할 수 밖에 없고 이때 함포의 유효사거리는 함포 자체의 성능상 최대사거리보다는 훨씬 짧았을 가능성이 높다.

박혜일 교수는 롤링에 따른 사각의 불확실성, 화약량과 발사체의 무게 차이를 고려할 경우 사거리 약 70m 정도까지는 높은 명중률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 100m가 넘어갈 경우 명중률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조선 수군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교전거리는 표준형 조총 유효사거리인 50m를 벗어나면서도 롤링에 따른 오차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거리라고 할 수 있다. 천자총통을 기준으로 할 경우 아무리 크게 잡아도 이상적 사각은 20도 미만, 유효 사거리는 400m 이하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피차 이동하는 선박 간에 벌어지는 해전에서 과연 아군이 원하는 교전거리를 계속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므로 실제로는 이 보다 더 근접한 상태에서의 교전도 빈번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일본군에서 유효사거리가 50m가 넘는 9몬메 이상의 대형 조총을 사용하기도 했으므로 실제 교전상황은 훨씬 복잡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본 수군 함선이 조선 수군 함선에 과도하게 접근했을 경우에도 화약무기 운용상의 제약점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배가 완전히 붙는 접현전의 경우에도 火砲의 사용이 제한되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

일본의 대형 아다케 등 적의 함선 높이가 판옥선과 동일하거다 더 높다면 접현전 상태에서도 화포 운용에 무리가 없다. 하지만 세키부네나 고바야처럼 일본 함선의 높이가 조선 수군의 주력함인 판옥선보다 현저히 낮은 상태라면 접현시에 하향사각을 해야만 사각이 나올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같은 하향사격시 대포 운용에 어떤 제한사항이 발생하는지 여부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대포에 장전한 발사체가 흘러내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유럽에서는 하향사격(Depressed Fire) 할 때 이중 격목을 사용해서 포탄 등 발사체를 흘러내리지 않게 했다. 하지만 현존하는 조선시대 화약무기 관련 문헌에서 이중 격목을 사용한 직접적 증거는 확인되지 않는다. 더구나 만약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이 사용한 포가의 형태가 동거라고 간주한다면 초단거리 하향사격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포가의 앞부분이 높고, 뒷부분이 낮아 17도 이하의 사각을 선택하는 것이 구조상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약 일정 거리 이상 접근했을 때, 특히 완전히 배가 붙는 접현 상태에서는 총통의 사각 제한 때문에 사격 불능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이때는 질려포통 등 손으로 투척할 수 있는 화약무기나 활 등 일반적인 투사무기를 운용할 수 있을 뿐이다.

조선시대 화약무기의 우수성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면서 화약무기의 우수성 덕택으로 아주 쉽게 일본 수군에 승리했다고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하지만 위에서 검토한 화약무기 운용상의 여러 제한점을 고려한다면, 조선 수군이 약점을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나름의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핑백

  • 兵者國之大事, 不可不察也 : 학익진과 조선 수군의 함상 화포 운용 전술 2008-11-10 20:56:20 #

    ... 내용이지만 구체적 근거가 없는 탓에 추정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수조규식에서 위 구절을 확인한 이상 그같은 추정은 좀 더 개연성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저번에 공개한 조선시대 수군의 사거리 규정과 연계시켜 이해할 경우 대/중형 총통은 200보(1보를 1.2m로 보는 통설에 따를 경우약 240m)에서 사격을 시작하고, 100보에선 함선을 선회시키는 방식으로 현측 ... more

  • 硏省齋居士의 雜學庫 : 조선후기 수군의 화포 사격 규정과 관련해서 2015-02-13 22:30:04 #

    ... 규정에 상당히 신경을 썼을 것이다.하지만 『난중일기』나 『임진장초』에는 적이 어느정도 거리에 들어왔을 때 화포를 쏘기 시작했다는 언급이 없다. 그러다가 번동아제님이 예전에 올린 포스팅[링크]에서 200보(대략 250~260m 정도) 이내에 화포를 사격한다는 규정을 보고 원론서를 찾아봤다. (좀 더 보니 포스팅에서 번동아제님이 인용하신 기록은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 more

덧글

  • anaki-我行 2008/07/11 04:51 # 답글

    오...
    중요한 기록이 발견되었군요....
  • 윤민혁 2008/07/11 08:11 # 답글

    역시, 그 거리에서 사격할 수밖에 없었군요. -_-; 예전에 임진왜란 작업할 때도 그 정도 아닐까 추정하긴 했는데 그걸 입증하는 문헌자료가 있었네요.
  • 구들장군 2008/07/11 20:10 # 삭제 답글

    글 잘 읽고 갑니다.
    화약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멀리서부터 마구 쏠 수는 없었겠군요.
  • 프랑켄 2008/07/11 22:38 # 삭제 답글

    더군다나 대포들도 제일 강력하다는 천자총통도 300킬로 정도 밖에 안 되고
    일반적으로 쓰인 지자총통은 7,80킬로 밖에 안 되는 미니 대포여서 암만 일본군선이 약하다 해도 한 번에 격침시킬 위력이 안 되었을 텐데.ㅋㅋ
    지금까지 이순신이 연전연승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대포의 활용 덕분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거 생각보다 그렇게 유리하진 않군요 이순신 장군이 평소 얼마나 훈련을 잘 시켰는지 잘 알 거 같습니다.
  • Sinsigel 2008/07/11 23:15 # 삭제 답글

    만기요람 수조편에도 적혀있는 대목이로군요.
    (뭐 따져보면 어디 만기요람 하나뿐이겠습니까.)

    역시 무기 설명서(화포식언해, 융원필비 등에 적힌 사거리)와
    실전에서의 격차는 어디나 크기 마련인가 봅니다.
  • 번동아제 2008/07/11 23:29 # 답글

    신시겔님/ 만기요람에는 무기별 구별이 전혀 없이 賊船在二百步之內前層用佛狼機鳥銃火箭弓箭等器分班打射라고 되어 있어 조총과 활에 대비한 총통류의 상대적 사거리를 짐작할 대목이 전혀 없는데 만기요람 수조편에도 적혀 있다고 하심은?
  • Sinsigel 2008/07/11 23:30 # 삭제

    이런, 말씀하신대로 명확히 구별해놓지 않고 있군요.-_-;
    오래 전에 봐서 잘못 기억한 듯 싶군요. 죄송합니다.
    지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번동아제 2008/07/11 23:35 # 답글

    고치고 있는데 댓글을 다셨군요. 사실 불랑기는 전조성과 후조성이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직사로 쏘는 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당초 불랑기의 특성 자체에서 상대적으로 수평에 가까운 각도로 쏠수 밖에 없는 개연성을 가지고 있죠. 이에 비해 위 고문서는 大中銃筒大箭이라고 하고 있어 전통적인 총통류를 지칭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불랑기에서는 대전류는 쏘지 않으니 더더욱 분명하죠. 불랑기 뿐만 아니라 이런 전통적인 총통류의 교전 거리도 상대적으로 짧았고 이는 다시 말해 수평에 가까운 각도로 쏘았을 가능성 높음을 보여주죠.

    더 중요한 것은 이미 위에도 언급했듯이 활이나 조총에 대비한 총통류의 상대적 교전 거리를 짐작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위 자료가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도 몇년째 추적해서 어렵게 허락받아 이 날씨에 6시간동안 땀에 범벅이 되어 촬영했는데....다들 비슷비슷한 소리라 눈에 띄는 구절은 한 다섯 대목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 번동아제 2008/07/11 23:40 # 답글

    아행님 민혁님 구들장군님 / 이것이 육상전에서 불랑기 100보 운운하는 것처럼 최후 저지 사격의 의미인가. 아니면 일상적인 교전거리를 지칭하는 것인가란느 점은 조금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데... 일단 훈련할 때도 200보 기준으로 실시했다면 아무래도 무언가 그 이상 거리에서는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을 개연성은 있었을듯 합니다.

    프랑켄님/ 서구 화포와의 비교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없어지는 부분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만 임진왜란 해전에서 단순히 화포의 우위라고 단순히 표현하기엔 확실히 사정이 복잡한 것 같습니다.
  • 루드라 2008/07/12 10:08 # 답글

    잘 읽었습니다. 항상 감사히 읽고 있다는... ^^
  • Orca 2008/07/13 09:26 # 삭제 답글

    좋은 내용이네요...^^;;

    그런데 이 포스팅과 좀 관련없는 내용이지만, 저번에 차승자총통 등의
    휘어진 총신 부분은 좀 결론이 나셨나요?

    http://blog.paran.com/note100/24871454

    여기서 제가 괜히 엉뚱한 헛소리 한 것도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신 건지 좀 궁금해서 여쭈어 봅니다...^^;;
  • 번동아제 2008/07/13 11:03 # 삭제 답글

    Orca님/ 제 생각을 정리한다기보단 총기류나 탄독학쪽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받아 확고한 결론을 받으려고 했는데

    두 분 중 한 분은
    "생각보다 변수가 많아 복잡하다. 다른 전문가를 소개해 주겠다"

    소개받은 그 분은
    "화약의 양이나 탄환과 총열 내 유격에 따라 변수가 너무 많다. 현 상태로 언급하긴 조심스럽다. 시간을 달라"

    였습니다. 두 분에게 답이 안나오니 제 추가 포스팅도 하세월입니다.
  • Orca 2008/07/13 18:18 # 삭제 답글

    아 그렇군요...그럼 나중에 새로운 소식이 나오면 꼭 포스팅 부탁드립니다.

    많이 바쁘신 것 같은데 건강 잘 챙기시고요........^^
  • 티티 2008/07/15 21:40 # 답글

    저도 이 부분이 많이 궁금했습니다.
    안정장치가 없는 화포가 과연 어느정도 정밀할 수 있었을까..

    근데 요즘도 우리나라 해군의 포술은 국제적으로 알아준다죠?
    역시 이순신 장군님의 후예들입니다 ㅎ
  • 백돼지 2008/07/18 02:02 # 답글

    사격개시 240m라... 보통 총통에 점화용으로 사용하는 약선이라는 것이 연소 속도가 즉각적이었습니까? 제가 여태 총통의 사격 실험 영상 같은걸 본 적이 없어서 도화선처럼 약간 느리게 타는 걸로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느리게 타는 것이라면, 중약선이면 길이가 30cm 좀 못된다고 하고 반쯤은 약실 안으로 들어간다고 하니 노출부가 15cm 라고 해도 이게 다 타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고, 그럼 배의 롤링을 예측해서 몇초 전에 점화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나 쐈는가 싶습니다. 그걸 해냈다면 포수의 숙련도가 대단했던가 노출된 약선을 짧게 잘라서 쏘는 꼼수를 쓰던가 했을듯...

    혹 떨어지는 명중률을 보완하기 위한 일제사격이나 교차사격 같은 사격 통제 기술도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일제사격을 하려면 함선이 그만한 반동을 받아줄 수 있어야 겠지만서도...
  • 밀리터리 2008/07/21 02:00 # 삭제 답글

    수전훈련상의 경우가 240m이지만.. 각도를 35~40도 기준을 둔다면 최소한 천자/황자/지자/별황자등 주력 대형화포 5종에 대해서는 사정거리가 최소한 300m 최대한 600m 수준이 나오는 것으로 압니다. 각 화포 실험훈련 사정거리 기준을 두어서 언급했습니다만..
  • 한교 2008/07/22 01:11 # 답글

    와.. 정말 새로운 기록발굴로 새 지평을 여시네요 ㅎㅎ 잘 보고 갑니다.
    근데 기본사격거리가 240이라면 주적의배가 상당히 약한것일까요..

    서유럽 함선들도 그정도 거리에서 싸우진 않을텐데..;;


  • 뚱띠이 2008/07/25 23:17 # 답글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많이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 번동아제 2008/07/27 23:12 # 답글

    Orca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티티님/ 네 확실히 의문이죠

    백돼지님/ 재질이 얼마나 당시 것에 근접하지는 의문하지만 해사의 재현 사격에선 약 10초 정도 소요되더군요. 말씀처럼 점화후 발사까지 지연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롤링에 대한 취약성은 더 커집니다.

    다양한 보완방법이 필요하겠지만 현재로선 해상사격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사료가 없으니 추정의 범위를 넘기가 힘들죠. 현재까지 해상 사격에 대해 남아있는 자료라고는 1) 해상에서 우군에 대해 오인사격을 하지 말것을 주의하는 절목(미공개 문서중 일부) 2) (불랑기에 적용된 것으로 보이는) 직접 조준사격을 지시하는 풍천유향의 구절 3) 이 글에서 언급한 미공개 문서의 사거리 기준 세가지 뿐입니다.

    밀리터리님/ 최대사거리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의도된 표적에 명중할수 있는 실질적인 유효 사거리를 따져 보자는 것이 위 글의 취지입니다. 최대사거리로 치면 위에서 언급한 사거리를 능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한교님/ 최초 사격거리가 저 정도라는 뜻일 것이고 실제 첫 발 사격후 순식간에 근접전이 벌어질수 밖에 없다고 봐야죠.

    뚱띠이님/ ^^
  • 음.... 2008/08/04 18:58 # 삭제 답글

    어떤 사람(그리고 어떤 블로그들)과 몇몇 박물관 안내문에서 1킬로 내외의 사거리를 말하던데 그건 결국 서류상의 스펙이었던 건가요..?
  • 번동아제 2008/08/07 23:36 # 답글

    음/ 제가 이야기한 것은 최대사거리가 아니고 해상에서 의도된 표적을 맞출수 있는 사거리를 의미한 겁니다. 육상전에서 적이 밀집대형으로 모여있고, 직접적인 조준사격이 아니라 대충 표적으로 쏘는 정도의 지향사격이라면 최대 사거리에서도 목표에 타격을 줄수는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유효사거리가 변동될 여지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 백상어 2009/01/06 16:46 # 삭제 답글

    관련된 자료들 블로그하는 중이라 늘 많은 참고하구 갑니다^^

    건강하시고 새해에는 복많이 받으셔요^^
  • 번동아제 2009/01/09 00:35 #

    감사합니다. 백상어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
  • 성일 2009/07/18 23:43 # 삭제 답글

    오랜만에 뵙습니다. 좋은 글 정말 잘 일었습니다. 사정거리에 대한 고찰들...
    혹 그전에 쓰신 논문들이 어디에 개재되어 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한번 찾아서 읽어 보고 싶습니다만. ㅠㅠ
  • 번동아제 2009/07/19 14:15 #

    조선시대 화약무기 운용술 전반을 다룬 논문입니다. 육군박물관에서 발행한 논문집에 실렸습니다.
  • 2009/07/19 22:1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번동아제 2009/07/19 23:55 #

    네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 현무지신 2009/10/12 20:02 # 삭제 답글

    제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익숙치 않은 훈련병 교육에 사용하는 훈련교본이다 보니, 200보 등으로 짧은 사거리에서의 발사부터 한다는 의미에서 저렇게 해 놓은 것 같습니다. 실전이나 어느 정도 숙달된 경우에는 딱히 200보에 한정하진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기록에 나오는 것처럼 초장거리 발사는...적선들이 포구 등 특정 장소에 몰려 있거나 하지 않는한 힘들 것 같네요. 전에 제주도 갔다가 유람선을 타 보았었는데, 비록 그 날 바다가 좀 거칠었
    다고는 하지만 출렁임이 상당하더군요...안정성이 높은 평저선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출렁임은 각오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 qqqqA 2011/12/09 18:57 # 삭제 답글

    평저선과 용골구조선은 움직입 자체가 다릅니다.
    평저선은 파도의 파형에 따라 흔들리지만, 용골구조선체는 자체의
    복원력 내지는 상쇄력 때문에 피칭이 심해 집니다.
    이것이 만약 외부 파장과 길이가 같고 그 주기가 +내지- 1/2주기라면 환상적
    일정도로 좌우 흔들림이 없지만 실지로는 거의 +-1/1.414가 대부분인지라 캐안습입니다.
    그리고 만약 평저너비의 1/2이하 진폭의 파도일경우 바닥이 그냥 씹어 버리기 때문에 총통의 사거리나 명중률에 영향을 심대히 미치는 좌우 피칭이 아닌 상하 롤링이 되어버립니다.
  • 2013/02/12 15:5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번동아제 2013/02/15 18:46 #

    우선 이순신 장군의 전술과 조선 수군의 전술을 구분할 수 있는지 여부도 따져봐야하구요....

    당시 조선 수군의 전투방법이 등선육박전을 회피하는 상태에서 화약무기 위주의 화력전을 구사한 것을 사실이지만 이것을 영국의 Line of battle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습니다.

    그렇게 직접적으로 비교할만큼 조선시대 사료가 풍부한 것도 아니고, 지금 남아있는 사료만 봐도 양자가 일부 유사점은 있을지언정 동일하다고 단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조선수군 고문서를 보면 1) 선회포격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같은 제자리 선회기동은 범선인 전열함에서는 불가능한 기동이며. 2) 조선 판옥선들은 현측은 물론이고 함수에서도 대구경 화약무기를 상당부분 운용한 사실이 여러 고문서를 통해 확인가능한데 비해 전열함은 전형적인 현측 위주의 함포 운용술을 구사합니다. 이런 차이가 있는데 이순신 내지 조선수군의 해전 수행 방법을 전열함교리와 동일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됩니다.

    당시 조선 수군의 진형들은 기본적으로 육군에서도 사용하던 것이고, 이처럼 육상에서의 진형과 해전에서의 진형이 뚜렷히 구별되지 않는 경향은 1600년대 이전 영국 해군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화약무기 운용술은 화약무기 운용술이고, 진법은 진법인데 화포진법이란 말은 무엇을 지칭하시는지 모르겠네요.
  • 2013/02/12 16:0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번동아제 2013/02/15 18:52 #

    왜구를 대처할 때 주로 해상에서 적을 격퇴하느냐, 아니면 육상에서 격퇴하느냐의 문제는 같은 조선시대라도 개별 시대별로 편차가 있었습니다.

    1457년의 사례는 논외로하고, 1591년의 사례는 다른 사료에서도 확인되기 때문에 임란 직전에 수군을 소극적으로 운용하는 방식의 논의는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만...이것이 실제 임란 초기 전체 수군에 적용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경상좌도 등 특정 지역에서만 한정적-한시적으로 적용된 전략방침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 2013/02/19 18:0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랑스도르프 2014/02/02 12:13 # 삭제 답글

    사실 근현대의 함포도 장치의 도움없이 출렁거리는 배 위에서 정확히 쏜다는게 참 쉬운일은 아닐겁니다. 그런 환경에서 적선을 맹렬히 타격해 압박하고 적의 사기를 꺾어 도선전술을 무력화 시켰다는건 참으로... 뭐랄까 그 당시 베테랑 포병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명중률이 낮다고 하더라도 판옥전선 수십척이 집단 기동전술로 화망을 구성해 적함들을 만신창이 만들어놓으면, 사기는 둘째치더라도 정신이라는게 없어서 도선공격을 효율적으로 할 수 없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 번동아제 2014/02/02 16:08 #

    네 기술적으로 아주 쉽게 이기는 상황은 아니었다는 것이 제 취지이고, 말씀하신 것처럼 조선 수군의 감투정신이 함께했기에 승리를 할 수 있었을 겁니다.
  • d 2018/02/28 16:01 # 삭제

    출렁이더라도 그 출렁 강도의 단위에 따라 낮은 단계의 출렁 강도는 함포의 명중률을 높일수가 있습니다 이순신의 조선 수군은 파도가 심한 외해보다는 파도가 약한 내해에서 활동하여 작전하였기에 배의 출렁 강도를 최소화한 상태에서 함포 사격률을 높일수가 있지요
  • 랑스도르프 2014/02/02 12:23 # 삭제 답글

    들은바로는 임진란때, 서양의 캐니스터 탄이나 포도탄처럼 총통을 이용해 산탄을 쏘기도 했다고 하던데, 그렇게 된다고 한다면 근접거리까지 가까이 붙어도 적들에겐 엄청난 심리적 압박일 것으로 사료됩니다. 산탄의 경우는 완전 붙은게 아닌 이상 포구탄속이 낮아지고 공기의 저항에 쉽게 탄속도가 줄어서 가까운 거리에서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에 하향사격의 문제점은 일부 상쇄하는 면도 있을겁니다.
  • 번동아제 2014/02/02 16:07 #

    캐니스터탄이나 포도탄과 동일하지는 않은데 조선에서 격목을 이용해서 산탄에 가까운 소연자들을 총통에 대량으로 장전 발사한 사례는 신기비결을 통해 확인 가능합니다. 이 같은 산탄에 가까운 발사체는 말씀처럼 근거리 사격에서도 큰 위력을 발휘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하향사격의 가장 큰 문제는 포구 입구에서 정식 발사 전 발사체가 흘러내리는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고, 이 문제는 이중 격목을 사용해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전장식 총통이라 포구로 작은 탄환을 잔뜩 넣어놓고 하향사격을 위해 총통 입구를 아랫쪽으로 기울이면 장전된 탄환들이 그냥 밖으로 흘러내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걸 막으려면 제일 마지막에 격목을 한번 더 넣어야하고 그것이 이중격목인데 이같은 이중격목은 우리나라 화약무기 책자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 d 2018/02/28 16:17 # 삭제

    총통에 산탄같은 탄환 여러개를 발사하는 무기는 지자총통에 사용되는 조란환으로 불리는 소형 탄환입니다 인조대에 편찬된 화포식언해 지자총통조에서는 조란환이 지자총통의 탄환으로 이용된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 김용 2019/09/18 23:34 # 삭제 답글

    조선시대 총통은 배의 바닥에 수평으로 고정하고 방패판 패란의 하구구멍을 통해서 수평으로 발사한다. 서구의 전열함과 마찬가지의 포격이다. 화살체 구조라 명중율은 더 높았을것이고, 삼나무로 만든 일본 선박을 관통 햇을거다. 3방정도 맞으면 그냥 침몰했을거다.사거리 어저고는 이순신장군의 격전지 를 보면 된다.
    한산대첩의 통영수로 가운데 왜선단 양쪽의 손선수군선단 수백대가 전열하면
    선단간의 거리는 200-300m 정도일것. 이순신은 이런 사거리를 유지할수 있는 환경을 찾아서 전투를 햤단. 그래서 수로와 해협 포구에서 전투를 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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