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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3월 27일
인터넷을 보다보면 가끔 출처 불명의 이야기가 나올 때가 있다. 난중일기와 성호사설을 들먹이며 경상도 사람을 비난하는 글도 그 중 하나다. 인용 내용은 비슷해서 보통 아래와 같은 구절로 구성되어 있다.
◆ 인터넷에 떠도는 가짜 글들 1) 慶尙將卒 皆烏合之兵也 日日一斬卽 軍令保全 // "경상도 군졸은 모조리 오합지졸이라 하루에 한놈 목을 쳐야 군률이 보전된다"(충무공 난중일기) 2) 慶尙徒 剃頭倭裝 導倭賊侵寇忠淸全羅 殺傷擄掠放火怯奸又諶於倭賊也 取老少婦女首及獻上倭將 "경상도놈들은 무리를 지어 머리를 깎고 왜옷을 입고 왜적의 앞장서서 충청전라지방에 침입하여 죽이고 뺏고 불지르고 강간함이 왜적보다 더 심한 바가 있다.노인 어린이 부녀자의 머리를 베어 왜의 장수에게 진상하기도 한다" (충무공 난중일기) 3) 경상도인은 권세를 무한히 추종하고 아부하므로 능히 밑에 두고 부릴만하다....허나 일단 스스로 권세를 쥐면 무한히 그 힘을 휘둘러 무릇 뭍사람을 번민케 한다....입으로는 올은말 만 하면서도 뒷전으로는 온갖 못된짓을 먼저 하며 입으로는 대의와 도리를 부르짖으며 뒷전으로는 스스로의 사사로운 이득과 안위 챙길 궁리를 하니 자못 가증스러운 데가 있다.....성정이 포악하여 함부로 사람의 수족을 다침을 예사로 안다.....소매를 나누어 헤어질때는 반드시 해악을 입히고 떠나가니 평소에 멀리함이 가한 무리라 할것이로다. (이익의 성호사설) 위 난중일기 운운하는 이야기는 새삼 따져 볼 필요도 없는 내용이다. 충무공 난중일기에는 이런 구절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구절을 그대로 믿은 사람이 있다면 난중일기를 보지 않은 사람이 틀림 없다. 물론 난중일기에 저런 구절이 나오는지 여부와 별개로 경상도 일부 해안지역에서 왜인으로 변장한 가왜나 부역자가 나왔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가왜나 부역자는 점령지역 전체에서 나왔을 뿐 경상도만의 현상도 아니었다. 심지어 함경도에서는 반란자들이 조선의 왕자들까지 일본군에 넘겨준 사례가 있다. 이순신이 장계 등을 통해 이같은 부역자 문제를 거론한 적이 있긴하나 위 구절과 같은 뉘앙스의 글은 아니다. 경상도 장졸에 대한 비판의 경우 원균에 대한 비판을 하는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경상우수영 수군을 비판하는 시각이 드러날 때가 있을뿐 위 인용구 같은 구절도 없을 뿐더러 그것이 경상도 장졸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되는 사례는 전무하다. 더구나 원균은 경상도 출신이 아니라 경기도 지역이 고향이다. 이것 외에도 이순신이 죽었을 때 전라도 사람들은 통곡하고 경상도 사람들이 잔치를 벌였다 같은 더 황당한 이야기까지 인터넷에서 볼 수 있다. 이순신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후원자들-시종일관 변함없는 후원자였던 서애 유성룡이나 신구차로 사형 직전의 이순신을 결사적으로 구명했던 약포 정탁 같은 인물들이 경상도 안동과 예천 태생임을 감안하면 이런 헛소리들도 전혀 근거가 없음은 물론이다. 이익의 성호사설을 인용했다고 주장하는 대목은 더욱 황당하다. 이익 역시 당파적으로 남인 출신이다. 이익이 비록 기호 남인이긴 하지만 기호 남인들도 기본적으로 영남 남인에 대해 우호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익이 저런 발언을 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실제로는 성호사설에 위에서 인용한 내용과 비슷한 구절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반대되는 내용-경상도를 찬양하는 내용은 있다. 이익은 경상도는 세력있는 문벌에 영합하지 않는다고 정반대의 이야기를 한다. ◆ 이익의 성호사설에 나오는 진짜 내용 오직 영남은 군자의 남은 교화를 지켜, 어른을 섬기는 예절의 절하고 꿇고 나오고 물러가는 것을 감히 어기지 못하여, 친척이면 친척이 되는 그 의리를 잃지 않고 친구이면 친구가 되는 의리를 잃지 않아서, 대대로 전하는 예전 정의로 기쁘게 성의를 보이며, 다른 좌석에서 만나면 비록 일찍이 얼굴을 알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절하고 읍(揖)하기를 의식과 같이 하고, 다른 고을과 마을에 손으로 지날 때에 장로(長老)가 있는데도 찾아뵙지 않으면 비판을 받으니, 이것이 신라의 남은 풍속이다. 지금에 있어 온 나라 가운데서 오륜이 구비한 시골을 찾자면 오직 이 한 지방이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산천 풍기로 증험할 수 있다.대저 영남의 큰 물은 낙동강인데, 사방의 크고 작은 하천이 일제히 모여들어 물 한 점도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이 없다. 그 물이 이와 같으면 그 산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여러 인심이 한데 뭉치어 부름이 있으면 반드시 화답하고, 일을 당하면 힘을 합하는 이치이다. 게다가 유현(儒賢)이 대대로 일어나 스스로 성교를 이루어서 고치고 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국의 즈음에도 오직 신라만이 마침내 삼국을 통일하여 1천 년을 전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인심이 흩어지지 않는까닭이 아니겠는가? 이것뿐 아니라 선비를 논할 때에도 관작과 지위로 하지 않고, 만일 한 고을의 물망이 아니면 비록 자신이 청자(靑紫)를 취하였더라도 수에 치지 않는다. 선현(先賢)을 대단히 좋아하고 사모하기 때문에 퇴계 이황ㆍ남명 조식ㆍ서애 유성룡ㆍ한강 정구ㆍ우복 정경세ㆍ여헌 장현광 여러 선생의 문에 출입한 자는 그 후세 자손을 모두 우족(右族)으로 칭하고, 부조(父祖)의 관작이 없는 것은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비가 행검을 힘써서 입사한 뒤에는 백의(白衣)로 영(嶺)을 넘는 것을 욕되게 여기고, 시속 좋아하는 것에 영합하는 것을 천하게 여기어, 우리나라에서 문벌을 숭상하는 풍습이 오직 이 한 지방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토풍(土風)으로 말하면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고 검소하고 사치하지 않으며, 부녀는 반드시 밤에 길쌈하고 선비는 모두 짚신을 신으며, 혼인 상사에 집 형세의 있고 없는 것에 따르고, 붕우와 친척이 도와주어 전복하고 유리하는 환을 면하며, 백성은 모두 토착하여 농사를 짓고 교활한 도적이 일어나지 않으며, 국가에 일이 있으면 솔선으로 난에 임하여 죽고 사는 것을 따지지 않으며, 만일 글을 읽고 도리를 말하여 그 행검과 재능이 밖으로 나타나는 자가 있으면 또한 옷깃을 여미고 스승으로 높이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이 후한 풍속, 즐거운 땅, 인의(仁義)의 시골이다. 이것을 버리고 장차 어디에 의지하여 돌아갈 것인가? 무릇 조정 귀족으로써 탐욕하는 사람들은 이익으로 나왔다가 이익이 다하면 배반하기 때문에 신하는 모름지기 물러가고 겸양하는 사이에서 구하여야 한다. 공자가, “능히 예로 사양하면 나라를 다스림에 무슨 어려움이 있으랴” 하였으니, 오직 영남만이 이런 것이 있다 하겠다. <성호사설 권13 인사문 영남오륜 > 구글이나 네이버 등으로 검색해 보면 날조된 내용으로 경상도를 폄하하는 글은 아주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는 상태다. 굳이 날조를 감행하면서까지 이런 글을 퍼트린 것으로 보아 이 같은 날조된 글의 최초 작성자는 분명한 악의와 고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의병항쟁만 봐도 전라도는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오늘 역사 밸리에는 전라도 운운하는 오래된 떡밥 하나가 올라 왔다. 이런 글 또한 진지하게 따져볼만한 이야기가 아님은 물론이다. 역사에서 긁어모은 이야기로 전라도를 비판하는 이야기는 대부분 훈요십조에서 출발한다. 훈요십조의 위작설 등 온갖 학설이 난무하고 있지만 훈요십조가 실제로 존재했다해도 그 의미는 제한적이다. 고려 태조 왕건은 애당초 나주에 강한 세력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나주와 그 주변 지역 출신 인물들은 혼맥으로도 고려 왕실과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호족으로 고려 초기 조정에서도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훈요십조의 진위 여부에 관계없이 왕건이 말한 역향 운운하는 이야기가 오늘날 전라도 전역에 해당되는 이야기일리가 없다. 다시 말해 고려 왕조에서 구 후백제 중심 지역에 대해 모종의 경계감을 가졌다 해도 그 지역은 주로 전주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었을 뿐 오늘날 전라도 지역 전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전주 지역을 반역의 고장으로 보는 이야기는 특정 지역의 인성 문제와 관련해서 진지하게 생각할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일까. 당연히 그럴리 없다. 이를테면 성호 이익은 훈요십조를 사실로 믿으면서도 고려에서 반역 가능성이 있는 지역으로 의심하던 전주가 결국 조선왕실의 뿌리가 됐다는 독특한 해석을 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고려가 경계하던 전주지역에 가문의 뿌리를 둔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개창했으니 결국 훈요십조에서 반역을 걱정했던 것이 현실화됐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런 특정지역에 대한 차별관은 고려 왕조에나 적용될수 있는 논리라는 이익의 해석법이다. 이처럼 조선왕조에서도 적용되지 못하는 이야기가 새삼 21세기의 대한민국에 적용될리가 있는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성호 이익은 훈요십조의 반역의 고향 운운하는 이야기가 조선왕조에서는 결코 적용될 수 없는 고려왕조적인 가치 기준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당연히 현대에 와서 훈요십조의 구절을 배신을 잘하는 지역성 운운으로 거칠게 연결하는 것은 근거가 전혀 없는 이야기가 된다. 왕 태조가 그 말년에 친히 훈요 열 가지 조항을 만들었으니, 그 내용인즉 (중략) “차현(車峴)에서 남쪽 공주강(公州江) 밖의 산과 땅은 모두가 반역적인 형체이고 인심도 그러하니, 거기서부터 남쪽 지방의 인사들에게 벼슬을 주어 용사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대개 고려 태조가 남긴 훈요는, 모두가 부처에 대한 일로서 도선의 협조와 찬성으로 되지 않은 것이 없으니 그 일의 잘하고 잘못함을 논하지는 않겠으나 지금 우리 성스러운 왕조의 기반이 사실 전주에서 시작되었으니, 도선의 말이 과연 헛된 것은 아니라 하겠다. 그러나 그가 한갓 사람을 등용하여 용사하지 못하게 금할 것은 알았으나, 하늘의 뜻과 인심이 이미 남모르는 사이에 옮겨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도 짧음이 있고 치도 긴 것이 있다시피 술법도 때로는 통하지 않는 점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 <성호사설 권12 인사문 여조 훈요> 조선왕조실록에 호남 민심 운운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나 그 또한 곧이 그대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그런 평가를 하는 기초 자체가 유교적 인간관, 세계관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21세기의 한국인이 그런 유교적 인간관이나 그에 기반한 평가를 그대로 수용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역사를 진지하게 공부한 사람이라면 실록에 나오는 전라도 인심에 대한 비판 구절 몇 개로 전라도를 폄하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거리인지 깊이 공감할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 항쟁을 면밀하게 분석해 보면 전라도 의병은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 기나긴 전쟁 동안 자기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에까지 진입해서 의병 항쟁을 벌였던 인물들은 대부분 전라도 의병들이었기 때문이다. 전라도 의병은 북으로는 황해도까지 동으로는 경상도 진주 일대까지 오가며 임진왜란 극복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구한말 대한제국이 국가 차원에선 전쟁 한번도 치러보지 못한 상태로 나라를 잃는 치욕을 당할 때 가장 격렬한 의병항쟁을 벌였던 지역 또한 바로 전라도다. 일본군 정규군은 전라도 지역 의병을 제압하기 위해 이른바 남선대토벌로 불리는 일련의 교전까지 치러야 했다. 솔직히 전쟁 한 번 없이 나라가 망하는 것은 치욕 중의 치욕이다. 그런 치욕을 면하게 해준 대표적 지역이 바로 전라도다. 가치관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는 동학 문제나 현대 이후의 역사는 거론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 의병과 구한말 전라도 의병 항쟁이라는 두가지 사례만 보더라도 전라도 사람들이 그 지역의 역사에 대해 충분히 자부심을 느껴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실록의 전라도 민심 운운하는 구절 몇 개는 그냥 웃어 넘겨도 무방할 정도로 무게감이 없는 이야기들이다. ■ 역사상 사대주의 문제를 특정 지역만의 문제로 보는 시각은 옳을까 반대로 경상도를 욕할 생각도 없다. 임란당시 가장 먼저 의병 투쟁을 시작, 격렬한 게릴라전을 수행하면서 왜군 정규군을 격퇴한 사례(고령)나 주요 도시를 수복(영천,경주)한 경상도 의병들의 고난에 찬 행적을 보면 오히려 경상도 의병들의 활약상은 곽재우 등 일부 신화적 인물의 전설에 가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사대주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우리 역사상 사대주의의 모든 문제점을 경상도로 연결시키려 하는 시도 또한 그리 진지한 접근법이 아니다. 명 태조의 과격한 대조선 외교에 분노를 느끼고 오랑캐 중에 중원에서 왕 노릇한 자가 많다며 요동정벌을 꿈꿨던 정도전이 바로 경상도 출신이다. 세종을 도와 한글 창제를 뒷받침했던 정인지는 경상도 출신인데 비해 한자의 우위를 거론하며 한글 창제를 반대했던 최만리는 황해도 출신이다. 임란 당시 명나라의 횡포에 분노를 느끼며 징비록을 통해서 명나라 원군을 혹평했던 유성룡은 바로 경상도 출신이다. 이에 비해 재조번방지처럼 명나라에 대한 절대 충성을 다짐하며 임란 극복의 모든 공이 명나라의 힘이었다고 주장하는 재조번방지의 저자 신경은 김장생·김집·송시열로 이어지는 기호 서인 출신이다. 현실 역학적 문제를 고려한 실용적 사대주의가 아니라 무조건적이고 이념적인 사대주의의 극한을 보여주는 송시열 또한 경상도 출신이 아니라 기호 지방 출신이었다. 이런 사례들은 사대주의 문제를 특정 지역 출신 인물들만의 문제로 연결시키려는 시각 자체가 근거가 없음을 보여준다. 친일파 문제에 있어서도 유독 경상도를 거론하는 것은 균형 감각을 상실한 비판이다. 을사오적, 정미7적, 경술국적 등 1905~1910년에 걸쳐 나라를 망하게 하는데 앞장섰던 주요 인물들의 고향은 대부분 경기도 일뿐 경상도 출신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독립유공자 수에 있어서도 경상도는 결코 적지 않으며 3.1운동 참여자 수에 있어서도 도별 통계를 따져보면 경상도는 오히려 많은 편에 속한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봐도 전라도나 경상도를 거론하며 특정 지역 사람 전체를 싸잡아서 비난하는 것은 일종의 자해행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인구통계를 보면 경상도와 전라도를 합친 인구는 전체 조선 인구의 1/2~3/5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거대한 인구 자원을 자랑하는 두 지역 중 하나를 싸잡아서 비난하는 것은 결국 한국인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물론 현대 이후 한국 정치에서의 지역 문제에 대해선 다양한 견해가 나올 수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특정한 자기의 정치적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과거 역사까지 난도질하는 것은 일종의 역사 날조일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결국 우리나라를 좀 먹는 자해행위에 불과한 짓거리다.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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