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시간 : 2011/04/20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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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테고리 : 역사잡설
홍산문화-소하연문화-하가점 하층문화-하가점 상층문화의 종족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이미 수년 전부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 실체는 모호하지만 고고학적인 추정연대가 마구 올라가면서도 황화문명과 비교할만한 새로운 고대 문명이라는 주장까지 중국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사의 영역 확장의 발판이 될 고고학적 유적이 되지 않을까라는 대중적인 기대가 적지 않은듯하다. 하지만 한국의 문헌사학계나 고고학계에서는 홍산문화나 소하연문화나 하가점 하층문화에 대해서는 한국사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 거의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하가점 하층, 소하연, 홍산문화에 대해서 그것이 한국사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선 대부분의 한국 학자들이 조심스러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학자들이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할수 밖에 없는 이유는 많다.
애당초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산융, 동호, 선비, 거란계 종족의 활동 지역이다. 그러므로 이들 지역의 고대 문화를 한국사와 연계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인과 관련이 있는 집단(잠정적으로 Proto-Korean으로 명명하자)이 이 지역에 한 때 거주했다는 사실을 어떤 식으로든 먼저 입증해야하는데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
우선 문헌 기록이 부실하므로 문헌사학적 관점에서 이런 주제에 대해 의미 있는 결과물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 끝없는 순환논증이나 동어반복의 토론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도 아니라면 보다 안정적으로 고대 한국사의 영역으로 간주할 수 있는 요하 이동이나 한반도 내 고고 유적과 홍산-소하연-하가점하층 문화 유적을 비교해서 관련성을 입증해야하는데 신석기단계나 청동기 조기 단계에서 요서와 요동-한반도 사이의 문화적 격차가 너무 커서 양 지역의 문화가 동일한 종족이 영위한 것임을 입증하는 것은 현 단계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곡옥 몇 개나 석조 성곽의 유사성으로 엄청난 시공간적 거리감을 무시하고 관련성을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도 모험적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진지한 한국 학자라면 홍산문화나 소하연 문화, 하가점 하층문화가 한국사와 직접적 관련이 있다거나 Proto-Korean이 건설한 문화라는 따위의 주장을 감히 하지는 못한다.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학자로서의 기본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가점 상층문화에서 과거에 십이대영자유형으로 부르던 고고 유지를 분리해서 별도의 십이대영자문화로 간주한 후 예맥계 문화와 연계해서 이해하는 학자는 다수가 존재하고 있다. 중국 학자들 중에도 이런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이 존재하고 있으므로 우리 학자들도 이 같은 주장을 인정하는데 큰 부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 십이대영자유형에서는 이른바 비파형 동검이 보편적으로 나타나므로 비교사적 차원에서라도 한국 학자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 이 글은?
아래 지도에서 붉은색 표시된 지역에서 대략 기원전 4500년부터 기원전 400년까지 살던 종족이 과연 누구였느냐에 대해 이야기한 것.

그렇다면 십이대영자문화 외에 요서 일대의 홍산문화-소하연문화-하가점 하층 문화는 문헌상에 보이는 산융이나 그도 아니라면 훗날 동호-선비/오환-거란으로 이어지는 집단의 선조가 건설한 것일까. 그리고 하가점 상층문화도 과연 산융이 건설한 문화일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해서도 여전히 Yes라고 답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고조선사를 전공하는 S 모 교수를 비롯한 국내 일부 문헌사학자들은 몇몇 부분적인 "고고학적 근거"들을 매우 거칠게 조합해서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지만 현 단계에서는 너무 성급한 결론으로 보인다.
중국 고고학계에서 체질인류학이나 분자유전학으로 고인골을 분석하는 일군의 학자들에 따르면 요서지역의 종족적 정체성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예시로 중국 고고 유적에서 나온 고인골을 토대로 한 체질인류학이나 분자유전학 연구 분야에서 최선두를 달리는 중국 모 대학 박사 학위 논문에 실린 한 도표를 소개한다.

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저자는 홍산문화에서 나온 인골을 형질인류학적 관점에서 고동북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고화북유형이나 고중원유형이 아니니 고대 중국 중원지역의 한족과는 관련이 없다는 점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소하연문화에서 나온 인골에서도 고동북유형으로 보고 있으니 입장이 같다.
하가점 하층 문화의 경우 조금 사정이 달라져서 고동북유형과 고화북유형이 섞여서 나옴을 알 수 있다. 남산근, 흑석구, 용두산 등 하가점 상층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의 경우에도 고화북유형으로 나와서 홍산문화나 소하연문화 단계와는 뚜렷한 종족적 차이를 보여준다.
홍산문화-소하연문화-하가점하층문화의 경우 정착 농경문화적 성격이 강한데 비해 하가점 상층문화의 경우 유목적 성격이 강해서 이같이 문화 교체의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중국 고고학계 내에서도 논란이 심했다. 하가점 하층문화가 기원전 15세기에 갑자기 사라진 원인에 대해서는 종족 교체 문제를 거론한 경우도 없지 않으나 대체로 기후 하강에 따른 농경문화의 파괴 때문에 하가점 상층문화가 출현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입장이다.
그 같은 기존의 해석이 사실일지는 모르나 이 논문의 표에 따르자면 우리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형태의 종족 교체가 원인일지도 모른다. 하가점 하층에서 상층으로 교체되는 시기를 기점으로 그 이전에는 요서지역에 보이지 않던 고화북유형에 속하는 집단이 요서 지역 유적 일대에서 광범위하게 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동호-선비-거란의 체질인류학적 특성에 대해서는 고몽고고원유형-현대 북아몽고인종과 유사하다고 보는 것이 중국 체질인류학계의 일반적인 통설이다. 농경적 특성이 강하던 하가점 하층문화를 대체해서 새롭게 출현한 유목적 성격이 농후한 하가점 상층문화라면 그 주체 종족이 고몽고고원유형이나 현대 북아몽고인종과 유사한 모종의 집단(先 동호-선비-거란)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고화북유형이 튀어나온 것이다.
물론 하가점 상층문화 주변부에서 고몽고고원유형-현대 북아몽고인종과 유사한 특성을 지닌 고인골이 전혀 출토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위 표에도 나오는 井沟子유지가 바로 요서 외곽에서 고몽고고원유형-현대 북아몽고인종(다시 말해 동호-선비-거란과 유사한 집단) 계열 인골이 나온 대표적 사례다. 이 유지에서 나온 고인골은 체질인류학적 특성 뿐만 아니라 mtDNA로 분석한 분자유전학적 분석결과에서도 현대 북아몽고인종과 유사한 것으로 나왔다.
다시 말해 요서지역에서는 고동북유형이 추적이 가능한 최초의 거주 집단이고, 두번째는 고화북유형이 진출했으며, 세번째는 고몽고고원유형이 점차 남하해서 한대 이후에는 동호-선비-거란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요서지역 고대문화에서 출토된 세가지 유형 중에 고몽고고원유형 내지 북아몽고인종을 한국인 내지 Proto-Korean과 연계해서 이해할 여지는 전혀 없다. 이미 선비족, 거란족의 체질인류학적 특성이 한대-요나라대 고분 유적에서 발굴한 인골을 분석해서 어느 정도 밝혀진 상태이고 이들은 Proto-Korean으로 간주할 수 있는 고인골이나 현대 한국인과는 체질인류학적 차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고화북유형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 그 이전에 해당하는 홍산 문화부터 소하연 문화를 거쳐 하가점 하층 문화단계까지의 이른바 고동북유형은 한국인 내지 Proto-Korean과 관련이 있을까. 이 글에서 일일이 고동북유형 인골과 Proto-Korean 인골들의 형질인류학적 지표를 나열할 생각은 없지만 포괄적으로 고동북유형으로 지칭하는 집단 중에 적어도 일부 집단은 Proto-Korean과 연계시켜 이해할만한 여지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미 이 지역에서 출토된 고인골 추출 mtDNA 중 일부에서 이 같은 결론에 근접하는 요소가 있음을 보여주는 보고서도 나오고 있다.
다시말해 (십이대영자문화를 제외한 좁은 의미의) 하가점상층문화를 한국사와 연계시켜 이해하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지만 그 외 홍산 문화-소하연 문화-하가점하층 문화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지가 있어 보인다. 물론 현재 시점에서 홍산 문화-소하연문화-하가점 하층문화가 한국의 고대사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직 근거가 부족한 가설(내지 망상)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들 문화 전체가 한국사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도 현 단계에서는 무리라는 이야기다.
* 한줄 요약
신석기 이래 요서 지역의 종족 계보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무척이나 복잡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사의 영역 확장의 발판이 될 고고학적 유적이 되지 않을까라는 대중적인 기대가 적지 않은듯하다. 하지만 한국의 문헌사학계나 고고학계에서는 홍산문화나 소하연문화나 하가점 하층문화에 대해서는 한국사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 거의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하가점 하층, 소하연, 홍산문화에 대해서 그것이 한국사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선 대부분의 한국 학자들이 조심스러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학자들이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할수 밖에 없는 이유는 많다.
애당초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산융, 동호, 선비, 거란계 종족의 활동 지역이다. 그러므로 이들 지역의 고대 문화를 한국사와 연계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인과 관련이 있는 집단(잠정적으로 Proto-Korean으로 명명하자)이 이 지역에 한 때 거주했다는 사실을 어떤 식으로든 먼저 입증해야하는데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
우선 문헌 기록이 부실하므로 문헌사학적 관점에서 이런 주제에 대해 의미 있는 결과물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 끝없는 순환논증이나 동어반복의 토론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도 아니라면 보다 안정적으로 고대 한국사의 영역으로 간주할 수 있는 요하 이동이나 한반도 내 고고 유적과 홍산-소하연-하가점하층 문화 유적을 비교해서 관련성을 입증해야하는데 신석기단계나 청동기 조기 단계에서 요서와 요동-한반도 사이의 문화적 격차가 너무 커서 양 지역의 문화가 동일한 종족이 영위한 것임을 입증하는 것은 현 단계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곡옥 몇 개나 석조 성곽의 유사성으로 엄청난 시공간적 거리감을 무시하고 관련성을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도 모험적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진지한 한국 학자라면 홍산문화나 소하연 문화, 하가점 하층문화가 한국사와 직접적 관련이 있다거나 Proto-Korean이 건설한 문화라는 따위의 주장을 감히 하지는 못한다.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학자로서의 기본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가점 상층문화에서 과거에 십이대영자유형으로 부르던 고고 유지를 분리해서 별도의 십이대영자문화로 간주한 후 예맥계 문화와 연계해서 이해하는 학자는 다수가 존재하고 있다. 중국 학자들 중에도 이런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이 존재하고 있으므로 우리 학자들도 이 같은 주장을 인정하는데 큰 부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 십이대영자유형에서는 이른바 비파형 동검이 보편적으로 나타나므로 비교사적 차원에서라도 한국 학자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 이 글은?
아래 지도에서 붉은색 표시된 지역에서 대략 기원전 4500년부터 기원전 400년까지 살던 종족이 과연 누구였느냐에 대해 이야기한 것.

그렇다면 십이대영자문화 외에 요서 일대의 홍산문화-소하연문화-하가점 하층 문화는 문헌상에 보이는 산융이나 그도 아니라면 훗날 동호-선비/오환-거란으로 이어지는 집단의 선조가 건설한 것일까. 그리고 하가점 상층문화도 과연 산융이 건설한 문화일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해서도 여전히 Yes라고 답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고조선사를 전공하는 S 모 교수를 비롯한 국내 일부 문헌사학자들은 몇몇 부분적인 "고고학적 근거"들을 매우 거칠게 조합해서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지만 현 단계에서는 너무 성급한 결론으로 보인다.
중국 고고학계에서 체질인류학이나 분자유전학으로 고인골을 분석하는 일군의 학자들에 따르면 요서지역의 종족적 정체성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예시로 중국 고고 유적에서 나온 고인골을 토대로 한 체질인류학이나 분자유전학 연구 분야에서 최선두를 달리는 중국 모 대학 박사 학위 논문에 실린 한 도표를 소개한다.

표 출처-<요서지구 선진시기 거주민의 체질인류학과 분자고고학연구>
2009 길림대 박사 논문 p116. 일부 편집.
2009 길림대 박사 논문 p116. 일부 편집.
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저자는 홍산문화에서 나온 인골을 형질인류학적 관점에서 고동북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고화북유형이나 고중원유형이 아니니 고대 중국 중원지역의 한족과는 관련이 없다는 점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소하연문화에서 나온 인골에서도 고동북유형으로 보고 있으니 입장이 같다.
하가점 하층 문화의 경우 조금 사정이 달라져서 고동북유형과 고화북유형이 섞여서 나옴을 알 수 있다. 남산근, 흑석구, 용두산 등 하가점 상층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의 경우에도 고화북유형으로 나와서 홍산문화나 소하연문화 단계와는 뚜렷한 종족적 차이를 보여준다.
홍산문화-소하연문화-하가점하층문화의 경우 정착 농경문화적 성격이 강한데 비해 하가점 상층문화의 경우 유목적 성격이 강해서 이같이 문화 교체의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중국 고고학계 내에서도 논란이 심했다. 하가점 하층문화가 기원전 15세기에 갑자기 사라진 원인에 대해서는 종족 교체 문제를 거론한 경우도 없지 않으나 대체로 기후 하강에 따른 농경문화의 파괴 때문에 하가점 상층문화가 출현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입장이다.
그 같은 기존의 해석이 사실일지는 모르나 이 논문의 표에 따르자면 우리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형태의 종족 교체가 원인일지도 모른다. 하가점 하층에서 상층으로 교체되는 시기를 기점으로 그 이전에는 요서지역에 보이지 않던 고화북유형에 속하는 집단이 요서 지역 유적 일대에서 광범위하게 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동호-선비-거란의 체질인류학적 특성에 대해서는 고몽고고원유형-현대 북아몽고인종과 유사하다고 보는 것이 중국 체질인류학계의 일반적인 통설이다. 농경적 특성이 강하던 하가점 하층문화를 대체해서 새롭게 출현한 유목적 성격이 농후한 하가점 상층문화라면 그 주체 종족이 고몽고고원유형이나 현대 북아몽고인종과 유사한 모종의 집단(先 동호-선비-거란)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고화북유형이 튀어나온 것이다.
물론 하가점 상층문화 주변부에서 고몽고고원유형-현대 북아몽고인종과 유사한 특성을 지닌 고인골이 전혀 출토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위 표에도 나오는 井沟子유지가 바로 요서 외곽에서 고몽고고원유형-현대 북아몽고인종(다시 말해 동호-선비-거란과 유사한 집단) 계열 인골이 나온 대표적 사례다. 이 유지에서 나온 고인골은 체질인류학적 특성 뿐만 아니라 mtDNA로 분석한 분자유전학적 분석결과에서도 현대 북아몽고인종과 유사한 것으로 나왔다.
다시 말해 요서지역에서는 고동북유형이 추적이 가능한 최초의 거주 집단이고, 두번째는 고화북유형이 진출했으며, 세번째는 고몽고고원유형이 점차 남하해서 한대 이후에는 동호-선비-거란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요서지역 고대문화에서 출토된 세가지 유형 중에 고몽고고원유형 내지 북아몽고인종을 한국인 내지 Proto-Korean과 연계해서 이해할 여지는 전혀 없다. 이미 선비족, 거란족의 체질인류학적 특성이 한대-요나라대 고분 유적에서 발굴한 인골을 분석해서 어느 정도 밝혀진 상태이고 이들은 Proto-Korean으로 간주할 수 있는 고인골이나 현대 한국인과는 체질인류학적 차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고화북유형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 그 이전에 해당하는 홍산 문화부터 소하연 문화를 거쳐 하가점 하층 문화단계까지의 이른바 고동북유형은 한국인 내지 Proto-Korean과 관련이 있을까. 이 글에서 일일이 고동북유형 인골과 Proto-Korean 인골들의 형질인류학적 지표를 나열할 생각은 없지만 포괄적으로 고동북유형으로 지칭하는 집단 중에 적어도 일부 집단은 Proto-Korean과 연계시켜 이해할만한 여지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미 이 지역에서 출토된 고인골 추출 mtDNA 중 일부에서 이 같은 결론에 근접하는 요소가 있음을 보여주는 보고서도 나오고 있다.
다시말해 (십이대영자문화를 제외한 좁은 의미의) 하가점상층문화를 한국사와 연계시켜 이해하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지만 그 외 홍산 문화-소하연 문화-하가점하층 문화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지가 있어 보인다. 물론 현재 시점에서 홍산 문화-소하연문화-하가점 하층문화가 한국의 고대사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직 근거가 부족한 가설(내지 망상)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들 문화 전체가 한국사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도 현 단계에서는 무리라는 이야기다.
* 한줄 요약
신석기 이래 요서 지역의 종족 계보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무척이나 복잡하다.
덧글
항상 건필하세요 !
접근 방법이 전혀 다른 터라... 수십년에서 100년 가까이되는 오랜 논쟁들이 전혀 다른 방법으로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해결될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도 홍산문화나 양소문화를 만든게 한국인과 관련된 민족이란 주장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네요.
http://www.pluskorea.net/sub_read.html?uid=10838§ion=section1§ion2=
http://pluskorea.net/sub_read.html?uid=14791§ion=section78
http://www.pluskorea.net/bbs.html?Table=ins_bbs3&mode=view&uid=2927&page=7§ion=
http://www.pluskorea.net/sub_read.html/sub_read.html?uid=10182§ion=section78
짜증나는 현실은 저런 것을 중국이나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이 인용해서 왜곡의 자료로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저런 것을 인용해서, 자 한국은 저런다... 이러면서 자신들의 왜곡을 합리화하는게 더 공포스러운 일이지요.
소하연 문화의 경우 형질인류학적인 분석 결과는 여전히 모호한 상황인든하고, 분자유전적인 접근으로 모계의 mtDNA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중국내 조선족이 가장 가까운 것으로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 일본, 그 다음이 남방 한족, 북방한족, 한국인으로 나왔습니다. 표본 설정을 어떻게 했기에 조선족과 한국인의 차이가 일본이나 한족보다 더 큰지 의문스럽긴한데 일단 조선족이 가장 가깝게 나왔다는건 눈여겨 볼 대목이죠.
사실 중국의 북방한족과 남방한족의 차이가 크고, 지역별로 편차가 크기 때문에 이들이 연구에서 언급한 북방한족과 남방한족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결과로 도출된 데이터인지에 대한 분석이 중요한데 이런 부분에 대해선 중국측 연구 결과를 좀 더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여간 홍산-소하연-하가점 하층에서 출토된 모든 인골이 한국인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소하연문화 등 일부 문화의 경우 (적어도 모계로는) 가장 가까운 집단이 조선족으로 나온 이상 앞으로 추가 연구가 필요하리라고 판단됩니다.
또, Y염색체 결과는...
mtDNA 외에 Y염색체 결과로는 어느 인종하고 가깝던가요?
유사역사학쪽에서는 몽골,거란 같은 집단들도 고대에는 한 집단이었다가 근래에야 우리와 분리된 집단이란 이야기를 많이하는데 위 연구를 보면 그게 아니라는걸 알수 있죠. 북아몽고인종이나 고몽고고원유형은 이미 신석기-청동기단계부터 동아몽고인종이나 고동북유형과 차이가 뚜렷합니다.
지역별 거주집단별로 형질인류학적인, 분작유전학적인 특성이 뚜렷이 식별되면 망상에 기초에 고대사의 범위를 무한대로 확대하는 식의 접근은 더 이상 불가능할 겁니다.
2 화북 사람들이 와서 동북계 주민을 몰살하고 그 여자를 노리개로 삼았다.
3 동북계 여성의 유전자는 거의 사라지거나 흡수되어 줄어들고 화북계 유전자만 남았다.
대충 이런뜻?
1. 숭무적 기풍을 가진 동북 유목민족이 살았다.
2. 숭무적 기풍을 가진 그들은 이따금 중원을 약탈하러 가서 많은 인구를 약탈 납치하여 여자는 성노리개로 남자는 노예노동력으로 삼았따.
3. 상족이 본격적인 중원정복을 위해 남하해 그 자리가 텅비었다. 그 자리를 동호, 선비족이 차지했다.
같은 고동북유형을 놓고도 북아몽고인종과 유사하다는 사람, 동아몽고인종과 유사하다는 사람, 섞였다고 보는 사람이 있어서 논쟁이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고화북유형이란 것도 제가 본문에서는 아래에서 위로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사실 이 같은 형질인류학적인 특성을 지닌 원주집단의 거주지가 어디인지는 좀 모호한 점이 많습니다.
그 같은 종족적인 불연속성, 역동성, 가변성이 문헌사학 이전 고고학이 다루는 시기에도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 중의 하나입니다.
주춧돌과 함께 공사현장에서 나와서 버려진 돌들인데 이게 대체 뭘까요?
발굴과 연구성과를 내는 과정의 폐쇄성때문에 중국쪽 발표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고..(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이걸 떠나서 연구가 내리는 결론에 대한 의문 제기는 어떤 학문이든 가능할 것이고, 중국측이 고대 문명을 지니치게 과장하고 연대를 지나치게 올리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