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서 지역 홍산-하가점 문화 시기의 종족 교체 가능성 40

홍산문화-소하연문화-하가점 하층문화-하가점 상층문화의 종족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이미 수년 전부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 실체는 모호하지만 고고학적인 추정연대가 마구 올라가면서도 황화문명과 비교할만한 새로운 고대 문명이라는 주장까지 중국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사의 영역 확장의 발판이 될 고고학적 유적이 되지 않을까라는 대중적인 기대가 적지 않은듯하다. 하지만 한국의 문헌사학계나 고고학계에서는 홍산문화나 소하연문화나 하가점 하층문화에 대해서는 한국사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 거의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하가점 하층, 소하연, 홍산문화에 대해서 그것이 한국사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선 대부분의 한국 학자들이 조심스러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학자들이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할수 밖에 없는 이유는 많다.

애당초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산융, 동호, 선비, 거란계 종족의 활동 지역이다. 그러므로 이들 지역의 고대 문화를 한국사와 연계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인과 관련이 있는 집단(잠정적으로 Proto-Korean으로 명명하자)이 이 지역에 한 때 거주했다는 사실을 어떤 식으로든 먼저 입증해야하는데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

우선 문헌 기록이 부실하므로 문헌사학적 관점에서 이런 주제에 대해 의미 있는 결과물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 끝없는 순환논증이나 동어반복의 토론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도 아니라면 보다 안정적으로 고대 한국사의 영역으로 간주할 수 있는 요하 이동이나 한반도 내  고고 유적과 홍산-소하연-하가점하층 문화 유적을 비교해서 관련성을 입증해야하는데 신석기단계나 청동기 조기 단계에서 요서와 요동-한반도 사이의 문화적 격차가 너무 커서 양 지역의 문화가 동일한 종족이 영위한 것임을 입증하는 것은 현 단계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곡옥 몇 개나 석조 성곽의 유사성으로 엄청난 시공간적 거리감을 무시하고 관련성을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도 모험적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진지한 한국 학자라면 홍산문화나 소하연 문화, 하가점 하층문화가 한국사와 직접적 관련이 있다거나 Proto-Korean이 건설한 문화라는 따위의 주장을 감히 하지는 못한다.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학자로서의 기본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가점 상층문화에서 과거에 십이대영자유형으로 부르던 고고 유지를 분리해서 별도의 십이대영자문화로 간주한 후 예맥계 문화와 연계해서 이해하는 학자는 다수가 존재하고 있다. 중국 학자들 중에도 이런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이 존재하고 있으므로 우리 학자들도 이 같은 주장을 인정하는데 큰 부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 십이대영자유형에서는 이른바 비파형 동검이 보편적으로 나타나므로 비교사적 차원에서라도 한국 학자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 이 글은?
아래 지도에서 붉은색 표시된 지역에서 대략 기원전 4500년부터 기원전 400년까지 살던 종족이 과연 누구였느냐에 대해 이야기한 것.




그렇다면 십이대영자문화 외에 요서 일대의 홍산문화-소하연문화-하가점 하층 문화는 문헌상에 보이는 산융이나 그도 아니라면 훗날 동호-선비/오환-거란으로 이어지는 집단의 선조가 건설한 것일까. 그리고 하가점 상층문화도 과연 산융이 건설한 문화일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해서도 여전히 Yes라고 답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고조선사를 전공하는 S 모 교수를 비롯한 국내 일부 문헌사학자들은 몇몇 부분적인 "고고학적 근거"들을 매우 거칠게 조합해서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지만 현 단계에서는 너무 성급한 결론으로 보인다.

중국 고고학계에서 체질인류학이나 분자유전학으로 고인골을 분석하는 일군의 학자들에 따르면 요서지역의 종족적 정체성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예시로 중국 고고 유적에서 나온 고인골을 토대로 한 체질인류학이나 분자유전학 연구 분야에서 최선두를 달리는 중국 모 대학 박사 학위 논문에 실린 한 도표를 소개한다.


표 출처-<요서지구 선진시기 거주민의 체질인류학과 분자고고학연구>
2009 길림대 박사 논문 p116. 일부 편집.


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저자는 홍산문화에서 나온 인골을 형질인류학적 관점에서 고동북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고화북유형이나 고중원유형이 아니니 고대 중국 중원지역의 한족과는 관련이 없다는 점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소하연문화에서 나온 인골에서도 고동북유형으로 보고 있으니 입장이 같다.

하가점 하층 문화의 경우 조금 사정이 달라져서 고동북유형과 고화북유형이 섞여서 나옴을 알 수 있다. 남산근, 흑석구, 용두산 등 하가점 상층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의 경우에도 고화북유형으로 나와서 홍산문화나 소하연문화 단계와는 뚜렷한 종족적 차이를 보여준다.

홍산문화-소하연문화-하가점하층문화의 경우 정착 농경문화적 성격이 강한데 비해 하가점 상층문화의 경우 유목적 성격이 강해서 이같이 문화 교체의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중국 고고학계 내에서도 논란이 심했다. 하가점 하층문화가 기원전 15세기에 갑자기 사라진 원인에 대해서는 종족 교체 문제를 거론한 경우도 없지 않으나 대체로 기후 하강에 따른 농경문화의 파괴 때문에 하가점 상층문화가 출현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입장이다.

그 같은 기존의 해석이 사실일지는 모르나 이 논문의 표에 따르자면 우리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형태의 종족 교체가 원인일지도 모른다. 하가점 하층에서 상층으로 교체되는 시기를 기점으로 그 이전에는 요서지역에 보이지 않던 고화북유형에 속하는 집단이 요서 지역 유적 일대에서 광범위하게 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동호-선비-거란의 체질인류학적 특성에 대해서는 고몽고고원유형-현대 북아몽고인종과 유사하다고 보는 것이 중국 체질인류학계의 일반적인 통설이다. 농경적 특성이 강하던 하가점 하층문화를 대체해서 새롭게 출현한 유목적 성격이 농후한 하가점 상층문화라면 그 주체 종족이 고몽고고원유형이나 현대 북아몽고인종과 유사한 모종의 집단(先 동호-선비-거란)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고화북유형이 튀어나온 것이다.

물론 하가점 상층문화 주변부에서 고몽고고원유형-현대 북아몽고인종과 유사한 특성을 지닌 고인골이 전혀 출토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위 표에도 나오는 井沟子유지가 바로 요서 외곽에서 고몽고고원유형-현대 북아몽고인종(다시 말해 동호-선비-거란과 유사한 집단) 계열 인골이 나온 대표적 사례다. 이 유지에서 나온 고인골은 체질인류학적 특성 뿐만 아니라 mtDNA로 분석한 분자유전학적 분석결과에서도 현대 북아몽고인종과 유사한 것으로 나왔다.

다시 말해 요서지역에서는 고동북유형이 추적이 가능한 최초의 거주 집단이고, 두번째는 고화북유형이 진출했으며, 세번째는 고몽고고원유형이 점차 남하해서 한대 이후에는 동호-선비-거란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요서지역 고대문화에서 출토된 세가지 유형 중에 고몽고고원유형 내지 북아몽고인종을 한국인 내지 Proto-Korean과 연계해서 이해할 여지는 전혀 없다. 이미 선비족, 거란족의 체질인류학적 특성이 한대-요나라대 고분 유적에서 발굴한 인골을 분석해서 어느 정도 밝혀진 상태이고 이들은 Proto-Korean으로 간주할 수 있는 고인골이나 현대 한국인과는 체질인류학적 차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고화북유형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 그 이전에 해당하는 홍산 문화부터 소하연 문화를 거쳐 하가점 하층 문화단계까지의 이른바 고동북유형은 한국인 내지 Proto-Korean과 관련이 있을까. 이 글에서 일일이 고동북유형 인골과 Proto-Korean 인골들의 형질인류학적 지표를 나열할 생각은 없지만 포괄적으로 고동북유형으로 지칭하는 집단 중에 적어도 일부 집단은 Proto-Korean과 연계시켜 이해할만한 여지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미 이 지역에서 출토된 고인골 추출 mtDNA 중 일부에서 이 같은 결론에 근접하는 요소가 있음을 보여주는 보고서도 나오고 있다.

다시말해 (십이대영자문화를 제외한 좁은 의미의) 하가점상층문화를 한국사와 연계시켜 이해하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지만 그 외  홍산 문화-소하연 문화-하가점하층 문화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지가 있어 보인다. 물론 현재 시점에서 홍산 문화-소하연문화-하가점 하층문화가 한국의 고대사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직 근거가 부족한 가설(내지 망상)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들 문화 전체가 한국사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도 현 단계에서는 무리라는 이야기다.


* 한줄 요약
신석기 이래 요서 지역의 종족 계보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무척이나 복잡하다.
 

 

핑백

  • 兵者國之大事, 不可不察也 : 요서 지역 출토 고인골과 현대 한중일몽 민족간의 관계 2011-05-01 01:15:33 #

    ... 또한 이 문화에서 출토된 고인골 집단 중에 일부가 현대 한국인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mtDNA 분석 결과가 있다고 이미 소개했다. (관련 글: 요서 지역 홍산-하가점 문화 시기의 종족 교체 가능성)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관련 자료를 소개한다. 표의 출처는 지난번에 공개한 자료 (요서지구 선진시기 ... more

덧글

  • 1234 2011/04/20 08:40 # 삭제 답글

    최근에 이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는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항상 건필하세요 !
  • 번동아제 2011/04/30 03:13 #

    감사합니다.
  • 역사관심 2011/04/20 08:56 # 답글

    많이 배우고 갑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번동아제 2011/04/30 03:14 #

    설을 풀다가 멈춘 글이라...다음에 기회가 되면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을 올리겠습니다.
  • 행인1 2011/04/20 08:56 # 답글

    관련은 있는것 같은데 그렇다고 확실하게 주장하기에는 아직 애매모호한 상황인것 같군요.
  • 번동아제 2011/04/30 03:15 #

    네 어느 쪽으로든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르다는 이야기입니다. 전체적으로 봐서 중국의 체질인류학 내지 형질인류학자들이 말하는 고동북유형이란 것도 아직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듯합니다. 같은 고동북유형이란 것도 편차가 있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 한반도 내의 고인골들도 시대에 따라 체질인류학적 특성이 조금씩 다른 점도 해명을 해야 합니다.
  • 식용달팽이 2011/04/20 13:10 # 답글

    애시당초에 현재 존재하는 집단의 종족계보 밝히기에도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리는데 유물만 가지고 종복계보를 밝히기란 요원한 일로 보입니다 영원한 미스터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숙원사업 정도 될 지는 모르죠 ㅎㅎㅎ
  • 번동아제 2011/04/30 03:18 #

    네 유물이나 문헌사학에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중국이 체질인류학이나 분자유전학으로 고대 종족 분포 문제를 풀겠다고 덤벼드는 것이 지금 상황입니다.

    접근 방법이 전혀 다른 터라... 수십년에서 100년 가까이되는 오랜 논쟁들이 전혀 다른 방법으로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해결될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 백범 2011/04/20 14:27 # 답글

    솔직히 그 홍산유적이나 양소 유적지 혹은 하가점 유적에서 발견된 유골이 한국인과 관련되었다 라는 주장을 찾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 유골과 한국인 내지는 고대 한국인종의 DNA의 연관성부터 규명하는게 우선일텐데...

    그런데도 홍산문화나 양소문화를 만든게 한국인과 관련된 민족이란 주장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네요.

    http://www.pluskorea.net/sub_read.html?uid=10838&section=section1&section2=

    http://pluskorea.net/sub_read.html?uid=14791&section=section78

    http://www.pluskorea.net/bbs.html?Table=ins_bbs3&mode=view&uid=2927&page=7&section=

    http://www.pluskorea.net/sub_read.html/sub_read.html?uid=10182&section=section78

  • DreamersFleet 2011/04/20 17:39 #

    비파형동검의 원형은 목검? 무신 X풀뜯을 소리인지. 목검이 어떻게 동검의 원형이 될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를일이군요. 동검의 원형은 동검이지. 석검의 원형도 동검이구요. 상식선에서 생각하면 될 일을 나무나 돌을 검으로 만들어서 뭐에 쓴단 말입니까? 아 고조선이니 환국이니 하면서 이런 황당한 이야기 심가히 하는 걸 애국이라고 하는 인간들 좀 사라졌으면 좋겠네요. 공해는 공해예요.
  • 백범 2011/04/20 19:10 #

    그 유적지에서 발견된 인골하고 중국인이나 한인, 혹은 고대 다른 동아시아 유목민하고의 어떠한 비교 대조도 없었는데, 어떻게 저 유골이 우리 조상이다 라고 할수 있는건지...

    짜증나는 현실은 저런 것을 중국이나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이 인용해서 왜곡의 자료로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저런 것을 인용해서, 자 한국은 저런다... 이러면서 자신들의 왜곡을 합리화하는게 더 공포스러운 일이지요.
  • 번동아제 2011/04/30 14:34 #

    홍산 문화의 경우 인공적인 변형이 심한 형태의 유골만 나와서 형질인류학적으로 제대로 된 분석은 못하고 있구요.

    소하연 문화의 경우 형질인류학적인 분석 결과는 여전히 모호한 상황인든하고, 분자유전적인 접근으로 모계의 mtDNA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중국내 조선족이 가장 가까운 것으로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 일본, 그 다음이 남방 한족, 북방한족, 한국인으로 나왔습니다. 표본 설정을 어떻게 했기에 조선족과 한국인의 차이가 일본이나 한족보다 더 큰지 의문스럽긴한데 일단 조선족이 가장 가깝게 나왔다는건 눈여겨 볼 대목이죠.

    사실 중국의 북방한족과 남방한족의 차이가 크고, 지역별로 편차가 크기 때문에 이들이 연구에서 언급한 북방한족과 남방한족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결과로 도출된 데이터인지에 대한 분석이 중요한데 이런 부분에 대해선 중국측 연구 결과를 좀 더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여간 홍산-소하연-하가점 하층에서 출토된 모든 인골이 한국인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소하연문화 등 일부 문화의 경우 (적어도 모계로는) 가장 가까운 집단이 조선족으로 나온 이상 앞으로 추가 연구가 필요하리라고 판단됩니다.

  • 백범 2011/04/30 15:29 #

    흠... 조선족이라. mtDNA로는 만주족이나 다이족(맞나?)하고 거란족 같은 종족들하고는 어떤관계인지도 궁금하군요.

    또, Y염색체 결과는...

    mtDNA 외에 Y염색체 결과로는 어느 인종하고 가깝던가요?
  • 만슈타인 2011/04/20 14:41 # 답글

    저 지역은 한마디로 심오한 지역이군요 -_- 저렇게 다양할 줄이야...
  • 번동아제 2011/04/30 14:35 #

    역사 시대 이후로도 이합집산이 심했던 지역이죠. 고고학이 다루는 시기에서도 그러했다는 것이 위 연구의 의미죠
  • 크세노폰 2011/04/20 16:57 # 답글

    흠 이미 보셨겠지만 배진영 교수가 쓴 고대 북경과 연문화하고 동북아재단에서 번역한 유연문화사 보면 아주 상이한 시각이 제대로 들어나있죠 유연문화사는 어떻하든 중국문화권으로 편입하려는 모습이 보이는데 배진영교수는 보류하는 입장으로 지역문화의 복잡성을 이야기 하니깐요 번동님 글도 배진영 교수쪽 생각에 가까운듯 하네요
  • 번동아제 2011/04/30 14:36 #

    네 그런 분들의 연구 결과를 크게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비슷한 이야기가 될수도 있겠죠. 전 기본적으로 형질인류학이나 분자유전학으로 고인골을 분석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 루드라 2011/04/22 08:48 # 답글

    환빠들만 사라져도 여러가지 가설들을 내놓기 좀 편할 건데 저놈의 환빠들 때문에 뭔 얘기를 속시원히 못하겠습니다. 뭔 소리든 자기들 편한대로 왜곡할테니까요.
  • 번동아제 2011/04/30 14:38 #

    네 그렇죠. A,B,C,D 4단계가 있어서 지금 단계에서 한번 검토해보자라고 하면 "이것은 D"라고 결론부터 내려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죠.
  • 지나가다 2011/04/22 21:29 # 삭제 답글

    결국엔 비파형동검집단이 누구였느냐가 키포인트가 아닐까 합니다. 참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가슴 설레면서도 갑갑하기 이를데 없는... ㅎㅎㅎ
  • 번동아제 2011/04/30 14:39 #

    비파형동검집단도 관심사지만 아무래도 이 글의 포인트는 그 이전 단계...특히 홍산-소하연-하가점 하층 문화가 종족적으로 어느 집단과 결부되느냐에 포인트를 둔 글입니다.

  • DreamersFleet 2011/04/23 23:41 # 답글

    얼핏 <상족동북기원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가점하층문화와 선상문화가 비슷하다고 하고 유물 중에 똑같은 것도 있다(직접 보여주지 않아서 그렇지 적지 않은 것 같더군요)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그 설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하는 것 같지만요.
  • 다스베이더 2011/04/27 12:13 # 답글

    이거 가지고 또 자기들 듣고싶은 것만 샥 듣는 인간들 나오지 않을지 걱정되네요
  • 번동아제 2011/04/30 14:42 #

    구더기 무섭다고 장을 담지 않을수는 없겠죠. 사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로도 이른바 "유사역사학"쪽에서 하는 이야기 중에 상당수는 헛소리로 판명되고 있습니다.

    유사역사학쪽에서는 몽골,거란 같은 집단들도 고대에는 한 집단이었다가 근래에야 우리와 분리된 집단이란 이야기를 많이하는데 위 연구를 보면 그게 아니라는걸 알수 있죠. 북아몽고인종이나 고몽고고원유형은 이미 신석기-청동기단계부터 동아몽고인종이나 고동북유형과 차이가 뚜렷합니다.

  • ArchDuke 2011/04/27 14:45 # 답글

    여튼 생각보다 이야기가 복잡하군요
  • 번동아제 2011/04/30 14:42 #

    네 특정한 결론에 방점을 찍는다기보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복잡할 것 같다는 것이 이 글의 핵심입니다.
  • kjhasdf 2011/04/27 16:18 # 삭제 답글

    포스팅의 내용은 좋은 이야기지만, 환뭐시기가 이런 이야기조차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생각하면 참....
  • 번동아제 2011/04/30 14:44 #

    위에도 이야기했지만 구더기 무섭다고 장을 담그지 않을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연구결과들이 이른바 유사역사학쪽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역별 거주집단별로 형질인류학적인, 분작유전학적인 특성이 뚜렷이 식별되면 망상에 기초에 고대사의 범위를 무한대로 확대하는 식의 접근은 더 이상 불가능할 겁니다.
  • ㅎㅎ 2011/04/27 17:09 # 삭제 답글

    1 동북 유목민족이 살았다.

    2 화북 사람들이 와서 동북계 주민을 몰살하고 그 여자를 노리개로 삼았다.

    3 동북계 여성의 유전자는 거의 사라지거나 흡수되어 줄어들고 화북계 유전자만 남았다.

    대충 이런뜻?
  • DreamersFleet 2011/04/27 21:12 #

    ㅎㅎ. 그런식의 해석은 처음듣습니다. 역사학자들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상족의 동북기원설"이라고 있는데 동북에서 발원한 상족이 중원을 쳐서 상나라 즉 은나라를 건국했다는 설은 있어도 그 역의 설은 없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상정해 보는 것은 가능하겠습니다.

    1. 숭무적 기풍을 가진 동북 유목민족이 살았다.
    2. 숭무적 기풍을 가진 그들은 이따금 중원을 약탈하러 가서 많은 인구를 약탈 납치하여 여자는 성노리개로 남자는 노예노동력으로 삼았따.
    3. 상족이 본격적인 중원정복을 위해 남하해 그 자리가 텅비었다. 그 자리를 동호, 선비족이 차지했다.
  • 번동아제 2011/04/30 14:48 #

    이 글에서 말하고자하는 것은 이 지역의 고대 종족 분포 양상을 밝히는 것이 기존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복잡하다는 것이지, 이미 특정한 결론을 내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고동북유형을 놓고도 북아몽고인종과 유사하다는 사람, 동아몽고인종과 유사하다는 사람, 섞였다고 보는 사람이 있어서 논쟁이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고화북유형이란 것도 제가 본문에서는 아래에서 위로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사실 이 같은 형질인류학적인 특성을 지닌 원주집단의 거주지가 어디인지는 좀 모호한 점이 많습니다.
  • 2011/04/27 18:2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번동아제 2011/04/30 14:48 #

    네 사실 국내에서는 거의 소개되지 않은 영역의 연구들이라...
  • 2011/04/28 03:3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번동아제 2011/04/30 14:50 #

    네 말씀하신 부분이 정답입니다. 역사시대 이후만 따질경우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 거주하던 선비-거란계집단이 금-원을 거치면서 공중분해되었던 사례가 있죠.

    그 같은 종족적인 불연속성, 역동성, 가변성이 문헌사학 이전 고고학이 다루는 시기에도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 중의 하나입니다.
  • 그런데 2011/04/29 01:06 # 삭제 답글

    http://gunhyul.blog.me/110107794602

    주춧돌과 함께 공사현장에서 나와서 버려진 돌들인데 이게 대체 뭘까요?
  • 번동아제 2011/04/30 14:48 #

    혹 비문만이라도 정면에서 찍은 사진을 봤으면 좋겠네요.
  • 역사관심 2011/04/30 03:19 # 답글

    그런데 중국은 저런 발굴현장을 외국학자들에게 개방하는지 궁금하군요. 중국의 유적/유물 발굴과 연구결과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는 서구학자들이 꽤 늘어난다는 글을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나서요 (논리의 오류군요. 카더라 통신; 그런데 보긴 봤습니다. 예전에 중국미이라 에 관한 발굴소식을 다룬 미국 Archeology 지였을겁니다).

    발굴과 연구성과를 내는 과정의 폐쇄성때문에 중국쪽 발표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고..(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 번동아제 2011/04/30 14:53 #

    사실 발굴 현장에 대한 공개는 어느 나라든 제한적입니다. 이것 자체를 문제삼을수는 없다고 생각하구요, 문제는 발굴보고서가 제대로 나오는가, 발굴보고서가 충분한 정보를 담고 있는가가 중요한데 이 문제에 대해 중국이 아직 부족한 점이 많죠. 최근에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걸 떠나서 연구가 내리는 결론에 대한 의문 제기는 어떤 학문이든 가능할 것이고, 중국측이 고대 문명을 지니치게 과장하고 연대를 지나치게 올리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 역사관심 2011/04/30 15:13 #

    답변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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