兵者國之大事, 不可不察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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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1년 경상좌도 수군의 육군 전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고문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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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만력 31년(1603년)의 경상도 지역 군적부 뭉치(미공개 문서)를 열람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군적부의 아래 위가 잘려나간 상태의 문서라 정확한 판독이 불가능해 아쉬움과 함께 탄식을 하던 중 종이 속에 비치는 글자가 아무래도 군사관련 기록인듯해서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일반적으로 이면지로 재활용된 문서라면 속지 종이에는 더 오래된 기록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조심스럽게 속지를 뜯어 보니 제 예상처럼 원래 문서의 작성시점 이전으로 소급될 가능성이 높은 군사관련 내용이 적혀 있더군요. 아마 속지 문서는 임진왜란 이전에 작성되고 만력 31년 군적부를 작성할 때 그 이면지를 재활용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 속지 문서 자체에 연도 표시는 없지만 아래와 같은 이유로 임진왜란 발발 직전에 작성된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1) 우선 속지 문서 중에 성화 19년 (1483년) 기준 우부승지 서장이 포함되어 있어 속지에 포함된 다른 문서 중에도 임진왜란 이전 것이 포함되어 있을 개연성을 높여 줍니다.

2) 속지 문서 내용 중에 동래, 부산포, 서평포 등의 병력이 언급되고 있으나 이들 지역은 임진왜란 중에는 시종일관 일본군 점령 지역이어서 병력 동원이 불가능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 문서가 임진왜란 중의 문서일수는 없습니다.

3) 원 문서와 달리 속지 문서에는 속오군 방식의 편제나 군적부 분위기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어 이 자료는 임진왜란 이후의 문서일수도 없습니다. 유성룡의 1598년도 장계에서 이미 (경상도)도내 속오군을 언급하는 것을 볼때 경상도 지역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중에 이미 속오군이 편성되어 있었음이 확실하므로 속오군이 언급되지 않은 문서라면 그 이전 것일 수 밖에 없죠.

임진왜란 중의 문서도 아니고 임진왜란 이후의 문서도 아니라면 당연히 이 문서는 임진왜란 이전의 경상좌도 육군과 수군의 부대 편성을 보여주는 고문서일수 밖에 없습니다.


임진왜란 이전 시대 중에서도 이 문서는 임진왜란 개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작성된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 문서에는 경상좌수영 소속 진포로 서평포를 언급하고 있는데 서평포는 1530년에 만들어진 동국여지승람에 나오지 않는 진포입니다. 다시 말해 이 문서는 1530년 이후 1592년 이전에 작성된 문서임을 의미합니다.

연대를 좀 더 좁혀보자면 개인적으로 이 문서는 1591년에 작성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문서에서는 경상좌수영의 병력을 파악하면서 선박의 보유량이나 사부,격군의 숫자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보병과 기병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 문서는 경상좌수영 예하부대를 수군이 아닌 육군으로 운용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문서입니다. 임진왜란 이전에 경상좌수영 소속 수군이 육군으로 운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시대는 언제일까요. 제가 봐선 1591년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임진왜란 때 사초가 산실되어 두찬으로 악명이 높은 선조실록에는 임진왜란 직전 수군 폐지론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백호전서의 통제사이충무공유사를 보면 "당시 조정에서는 순변사 신립의 건의에 따라 수군을 폐지하고 육전에만 전심하도록 하였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1591년에 신립의 건의에 의해 수군의 육상전투 명령이 하달되었다는 것이죠. 신뢰도가 떨어지는 개인기록이긴 하지만 선조실록의 두찬을 감안한다면 이런 중요한 기록이 실록 같은 공식 문서에 누락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감안해야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수영이나 전라좌수영이 해상전투를 수행한 것을 보면 조정이 1591년에 수군에 하달한 육상전투 명령이 결국 1592년 개전 이전 다시 취소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한 고문서는 1591년 조정의 육상전투 명령에 따라 (일시적으로라도) 경상좌수영이 실제로 육군으로 전환했을 개연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죠.

한발 더 나아가 '임진왜란 초기 경상좌수사 박홍을 비롯한 경상좌도수군이 왜 해상전투를 시도하려한 정황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푸는데도 이 문서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임진왜란 발발 초기 경상좌수영 소속 수군이 기습을 당해서 해상전투를 시도하기 쉽지는 않았겠지만 처음부터 너무 자연스럽게 수성전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 중앙조정차원에서 육상전투에 대한 사전 지침이 하달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할만 합니다. 그동안 이런 막연한 추정이나 의심을 뒷받침할 사료가 없었지만 이번 속지 고문서를 토대로 놓고 보면 혹시 1591년 조정에서 하달한 수군의 육상전투 명령이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반대로 취소된 이후에도 조정에서는 경상좌수영 지역에 한해서 육상전투 명령을 유지한 것이 아닐까하는 추정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임진왜란 이전의 지역별 세부적인 군액자료는 세종시대의 것이 유일합니다. 임진왜란 당시를 기준으로는 특정한 지역에 어느 정도의 병력이 할당되어 있었는지 알수 있는 자료는 매우 산발적으로만 남아있는 실정이죠. 이 자료에는 경상좌도의 정확한 군액, 특히 임란 초기 전투에서 매우 비중이 높은 동래, 부산포, 다대포 등의 정확한 군액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임진왜란 연구에도 큰 보탬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문서를 보면 경상좌수영 소속 진포인 부산포의 병력이 4교대 근무에 총 857명이고 이중 기병이 485명, 보병이 372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다대포의 병력이 1006명이고 그중에 기병이 481명입니다.

덧글

  • 슈타인호프 2008/08/25 00:08 답글

    헉 대단한 자료군요. 나머지 내용들이 어떻게 되었는지....흥미가 마구마구 샘솟습니다^^:;
  • 앞에는 시취와 관련된 규정, 각 병종별 분번 규정, 그 뒤로는 방어사에 할당되는 병력에 대한 언급이 있는듯한데 약간 내용이 잘 이해가 안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다시말해 이것도 완전한 문서는 아닙니다. 번동아제 2008/08/26 00:36

  • anaki-我行 2008/08/25 00:21 답글

    소위 말하는 방왜육전론 때문에 수군의 육군전환을 '상식'처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군요.

    중요한 자료일 가능성이 높겠군요.
  • 네 당시 경상좌수군에 모종의 지침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자료죠. 번동아제 2008/08/26 00:36

  • 초록불 2008/08/25 06:47 답글

    저도 대체 경상좌도수군은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했는데, 좋은 자료고, 좋은 해석이라 생각되네요.
  • 항상 그렇지만 조금 더 완전한 문서였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네요. 번동아제 2008/08/26 00:37

  • 구들장군 2008/08/25 08:47 삭제 | 답글

    번동아제님께서 발견하셨나보군요. 축하드립니다.

    군시절 제가 썼던 이면지들도 수백년 후엔 귀중한 사료일지도 모르겠군요. ^^;;
  • 이미 소장자가 있으니 발견이라고까지는 힘들어도 대충 평가는 제가 한 셈이죠. 이면지 혹은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수백년 전 컴퓨터 워드 파일 하나를 가지고 머리 터지게 분석을 하겠죠. ^^ 번동아제 2008/08/26 00:39

  • 뚱띠이 2008/08/26 00:22 답글

    좋은 자료를 찾게 되신 것을 우선 축하드립니다.
  • 찾으면 계속 나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번동아제 2008/08/26 00:40

  • 루드라 2008/08/27 00:56 답글

    역시 어떤 자료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군요. 좋은 자료 찾으신 거 축하드립니다. ^^
  • 윤민혁 2008/08/28 08:49 답글

    북도도 아니고 경상도, 그것도 수군의 육군 전환인데도 기병의 비율이 높다는 게 눈에 띄네요.
  • 조선 전기의 경우 팔도 전체 군액으로 따지면 기/보병 비율이 거의 대등하지만 약간 기병이 더 많은 것이 보통이죠, 경상도의 경우도 역시 그러했음을 보여주는 수인것 같습니다. 군액이야 어떻든 실제 지방군의 구체적인 수치를 보여주는 사례에서 상당히 높은 기병 숫자를 보여주는 것은 말씀처럼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번동아제 2008/08/29 00:20

  • 프랑켄 2008/08/28 12:38 답글

    ㅋㅋㅋ 앞으로는 기록물 잘 남겨야 겠습니다. 수백년 후에 저런 식으로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으니 말이죠
  • 제 생각에는 古 Computer File學 이 생길 것 같습니다. 번동아제 2008/08/29 00:21

  • 떡의최후 2009/08/03 10:13 삭제 | 답글

    별 상관 없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실록에 따르면 1592년 4월경에 "해도(海道)699) 의 주사(舟師)를 없애고 장사(將士)들은 육지에 올라와 전수하도록 명하였는데, 전라 수사 이순신(李舜臣)이 급히 아뢰기를,“수륙(水陸)의 전투와 수비 중 어느 하나도 없애서는 안 됩니다.”
    하였으므로 호남의 주사만은 온전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와있더군요
    그런데 호남의 주사만은 온전하게 되었단것은 그 외의 다른 수군은 육군화되었음을 의미하는 자료라고도 해석할수 있다고 봅니다.

  • 성일 2010/06/04 17:32 삭제 | 답글

    삼포왜란 이후에 수군과 육군을 합쳐서 진을 지키던 사례가 많던데. 기병, 보병이 여기에 나타나는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요?
  • 만약에 그런 식이라면 수군 자체 병력도 나타나야하는데 온전히 기,보병으로만 구별한 것으로 봐선 이 지역 수군 자체 편제에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번동아제 2010/06/08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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